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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원의 건강칼럼] 방광암 찾아주는 양변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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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오랜 친구인 A사장, 지독한 장사꾼입니다. 자기네 회사 제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지구 밖으로도’ 날아갈 사람입니다. 제품을 팔기 위해 뻔질나게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는 사나이입니다.

얼마 전 일밖에 모르던 A사장이 진찰실로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부인의 손에 끌려 들어오는데 꼭 도살장에 끌려 온 소 같습니다. 평소의 모습과는 딴판입니다. 본인은 입도 뻥긋 않는데 부인의 가시 돋친 말이 이어집니다. 며칠 전 2주간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답니다.

다음날 우연히 변기를 내리다 보니 온통 붉은색이었답니다. 자녀한테 물어 보니 아무도 화장실을 쓰지 않았다고 그러더랍니다. 남편이 일을 보고 물을 빼지 않았답니다. 바로 붉은색 오줌의 범인이 남편이었답니다. 바로 이틀 전의 일이랍니다. 아무래도 이 사람 해외 출장 가서 못된 짓하고 온 것이 분명하답니다.

지은 죄가 있어선지 피 오줌에 넋이 나간 것인지 기가 푹 죽어있습니다. 피 오줌을 눌 때 어디 아픈 데도 없었답니다. 오줌도 잘 나온답니다. 뿐만 아니라 그날 아침 이후 지금까지 눈 씻고 보아도 맑은 오줌만 나온답니다. 괜히 부인의 등쌀에 끌려 왔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논스톱으로 검사를 진행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내시경으로 방광을 들여다 봅니다. 방광 후벽에 산딸기만한 암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학용어로 ‘표재성(俵在性) 방광암’이라고 하는 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암에 걸린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 시기에 발견된 것은 무지무지한 행운이었습니다. 제대로만 치료한다면 90% 이상 완치가 가능한 아주 초기의 종양이기 때문입니다.

표재성 방광암의 치료는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환자야 암 소리를 들으면 눈 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겠지만, 이런 초기 암의 경우 전문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내시경을 통해 레이저로 지지거나 전기 칼로 순식간에 제거해 버립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아무런 증상도 없던 40세 이후의 남성이 배뇨 후 내려다보니 변기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고 호소한다면, 더구나 비뇨기과 전문의사가 들었다면 내색은 않더라도 무척 긴장하게 되고 곧장 정밀검사를 실시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무통성, 또는 무증상 혈뇨는 요로 즉 신장이나 방광의 종양을 강력히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도 빈도가 높은 방광종양을 가장 의심케 하는 것이지요. 소변에 피가 섞여 붉게 나온다는 것, 그 자체로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한두 번 붉게 나오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은 소변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마치 여우비처럼…. 그러다 보니 많은 환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끔직한 일입니다. 암세포는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자라고 퍼져나갑니다.

이틀 뒤 환자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한 몸으로 퇴원을 합니다. 환자에게 한마디 합니다. “자네가 감사해야 할 것은 어부인의 극성과 서양 문명의 이기인 ‘양변기’일세! 그날 부인께서 그 피 오줌을 못 보았더라면 아마 암 조직은 계속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걸세!”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시절,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그곳에서는 오줌의 색깔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낮같이 밝아진 화장실의 양변기는 혈뇨 발견에는 그저 그만입니다. 더구나 작은 것을 누고 물 내리는 것을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30여 년간 비뇨기 종양과 싸워온 저는, 양변기의 혈뇨를 발견한 부인 덕분에 남자의 방광암을 찾아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혈뇨를 통해 방광암을 조기에 찾아내야 하는 비뇨기과 의사들에게는 양변기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밝아진 화장실 문화가 암 조기 발견에 일조(一助)를 할 줄이야! 건설업자인들, 의사인들, 누가 알았겠습니까?

권성원 포천중문의대 교수, 한국전립선관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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