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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壽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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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성경 속에서 예수의 수의(壽衣)는 두 번 등장한다. 수의는 구세주의 몸을 감쌌기에 성의(聖衣)라고도 부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細麻布.고운 베)다.

예수의 주검을 거둔 사람은 공회 의원 요셉으로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세마포로 싼 다음 동굴 속에 안치했다. 사흘 뒤 막달라 마리아 등 여인들이 동굴을 찾아갔을 때 입구를 막아두었던 바위가 밀쳐져 있었다. 천사가 나타나 예수의 부활을 알려주었다.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세마포만 가지런히 접혀 동굴 속에 남아 있었다. 이후 세마포에 대한 언급은 아무 데도 없다.

전설에 따르면 그 세마포는 십자군 전쟁 당시 터키에서 발견돼 프랑스로 옮겨졌다. 화재를 피해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으로 옮겨와 보관되기 시작한 것은 1572년. 수의는 1898년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당시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었는데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예수 얼굴이 사진에 나타났다. 반신반의하던 상황에서 1931년 전문 작가가 다시 찍은 사진에서도 예수의 얼굴이 드러나면서 토리노의 수의는 '불가사의''기적'의 반열에 올랐다.

가로 1m에, 세로 4m의 세마포는 종교적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오른쪽 눈꺼풀이 찢어진 모습, 늑골 5번째와 6번째 사이 창에 찔린 상처, 심지어 채찍 자국까지 선명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세마포는 수난의 상징이 됐다. 예수의 몸이 부활하는 과정에서 신비의 물질이 흔적으로 남았다는 주장에 이르면서 부활의 상징으로도 불렸다.

현대과학이 개입한 것은 1988년이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수의는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기적을 믿는 사람들은 과학을 믿지 않으려했다.

'중세에 덧붙인 천을 진짜인 줄 알고 측정했다'는 실수론에서부터 '직조 방식이 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한 고급 천과 동일하다'는 반론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15일엔 수의의 뒤쪽에서도 예수의 얼굴이 확인됐다고 BBC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아직 많은 사람이 불가사의를 믿고 있다는 얘기다. 어차피 종교는 모순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물질적인 첨단의 21세기에도 불가사의한 아이러니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종교의 이름으로.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