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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문화’ 영화 붐 일으킨 전봉관 KAIST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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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진=박종근 기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만주 벌판에서 벌어지는 보물지도 찾기를 서부극 스타일로 다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지난주 개봉 나흘 만에 220만 관객을 모았다. 올해 초에는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의 당시 이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과 ‘라듸오 데이즈’가 개봉했다. 가을에는 김혜수·박해일 주연의 ‘모던보이’가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 영화계에 ‘일제강점기 문화’가 새로운 소재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문화를 연구해 온 전봉관(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일제시대 ‘골드러시’를 다룬 『황금광 시대』를 2005년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당시 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경성기담』『럭키경성』를 줄이어 펴내 ‘경성 뒷골목 전문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제강점기가 ‘문화 코드’로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요.

“조선시대는 계속 다뤄졌고, 주몽으로 고대사 바람도 불었잖아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해졌죠. 식민 시대를 다룬 콘텐트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다른 시각으로 시대를 보는 겁니다.”

-어떤 다른 시각인가요.

“1930년대 한반도에선 사실상 독립운동의 개념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어요. 독립운동 무대가 만주·상하이로 넘어가고 국내는 비교적 평화로웠다고 해요. 20년대 공황이 끝나고 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안정적이었던 거죠. ‘모던’하게 즐길 수 있는 때가 온 거에요. 카페가 있고,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고, 공연도 열리고요. 이 시기에서 교과서가 다루는 거대담론 대신 재밌고 독특한 이야기를 찾는 거죠.”

-‘30년대 독립운동 개념이 사라졌다’는 건 위험한 발언 아닌가요.

“일부 기록에선 ‘1945년(해방 직후) 서울 시내가 울음바다였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건 단순한 친일 문제가 아니에요. 일본어를 쓰고, 일본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익숙한 세계가 사라지는 게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강점기는 살아있는 역사고, 현실 정치의 문제죠. 그러니 ‘기생도, 룸펜도, 순사도 알고 보니 독립 투사였다’는 설정이 나와요. 학자들마저 ‘나라 잃은 설움에 연애에 몰두했다’는 식으로 연애 열풍을 분석하고요. 친일·민족해방에 매여 근대 문화 연구가 부족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경성’인가요. 책 제목마다 등장하는데.

“경성은 시간적 배경이지 공간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엔 한성이었고, 해방 뒤엔 서울이 됐잖아요. ‘게이죠’, 즉 경성이라 불렸던 때는 식민 시대 뿐이었어요. 경성이 1910년부터 45년까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 역할을 하는 거죠. 만약 드라마 제목을 ‘경성 스캔들’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스캔들’이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현대시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문화연구를 시작했나요.

“일제강점기엔 많은 문인이 기자였어요. 채만식도, 김기림도 그랬죠. 시인 백석의 경우, 만주를 여행하면서 시를 써 잡지에 싣는 게 기자 활동이었어요. 문인으로서, 기자로서의 글쓰기가 혼재돼 있는거죠. 문학도들은 옛날 잡지를 읽으며 이를 연구할 수 밖에 없어요. 자연스럽게 당시 문화에 관심이 가더군요. 학계가 경직돼서 ‘시 아니면 소설을 해라’ 하니까 시를 전공했지만 원래 문화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문학과 역사의 중간, 제3의 길에 선 거죠.”

-제3의 길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어떤가요.

“철저한 무관심이죠. 보수적인 학계가 인문학의 영역을 턱없이 좁혀 놓아서 제 책은 지금 기준에선 문사철(文史哲) 어디에도 안 들어가요. 하지만 시대는 어려운 고급역사 정보보다 이런 것들을 요구해요. 수준 높은 인문학적 지식을 가르치려면 대중과 쉽게 소통하는 과정부터 거쳐야죠.”

문인이 기자였고 기자가 문인이었던, 인문학이 한층 넓은 영역을 아우르던 그 시기의 자료에서 전 교수는 ‘숨어있는 역사의 1인치’를 찾고 있다. 그는 ‘경성 시리즈’ 5부작 중『경성 자살클럽』을 이달 말 내놓는다. 연말엔 살인·은행강도 등 강력범죄를 다룬 『경성 4부』를 펴낼 계획이다.

글=홍주희,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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