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비운의 챔피언 벤 10차방어전 패배후 전격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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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나와 결혼해 주겠습니까.』 3일 영국 뉴캐슬에서 벌어진 WBC 슈퍼미들급 타이틀매치에서 패배한 나이젤 벤(32.영국)이은퇴의사를 밝힌뒤 링에서 무릎을 꿇고 여자친구에게 공개청혼했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과 같은 모습을 지켜본 1만여명의 관중은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비운의 챔피언」 벤의 은퇴선언과 공개청혼이 세계 링계의 감흥어린 관심을 모으고 있다.벤은 이날 홈링에서 벌어진 타이틀 10차방어전에서 올해 36세인 툴레인 말리냐(남아공)에게 예상밖으로 무기력한 경기를 벌이다 2-1로 판정패했다 .
벤의 은퇴가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그가 지난해 2월 소나기펀치로 링에 쓰러뜨린 미국의 제럴드 매클레란이 지금까지 의식을회복하지 못하는 식물인간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책감으로 벤은 한동안 링을 떠나 방황하며 정신적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고 매클레란의 동료들로부터 복수당할 것이란 협박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나는 많은 사람과 싸워왔다.또 나는 어떠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오늘 나는 링을 떠나려 한다.』 링에서 생긴 사고로 인한 그동안의 고뇌를 반영이라도 하듯 그는 이날 패배가 선언되자 링에서 마이크를 움켜잡고울먹이며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이어 곧바로 링사이드에서 지켜보던 여자친구 캐롤라인을 링으로 불러올려 무릎을 꿇고 관 중앞에서 극적인 공개청혼을 함으로써 마지막 링을 장식하고 새로운 인생문을 열었다.87년 프로에 데뷔한 벤의 프로전적은 42승1무3패.
벤은 92년 10월3일 이탈리아 마리노로 원정,모로 갈바노를3회 T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된뒤 3년5개월간 슈퍼미들급 왕좌를 지켜왔다.특히 90년 11월18일 크리스 유방크(영국)에게 9회 TKO로 진 뒤에는 한번도 패하지 않고 연승가도를 달려왔다. 유럽에서는 최고의 강펀치로 알려진 벤의 전격적인 은퇴는 복싱 폐지론까지 일고 있는 링사고에서 가해자도 고통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정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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