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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포 탈출하기 <28>모처럼만에 우연찮게 만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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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15면

이번 회와 다음 회에선 우리가 무심코 자주 쓰는 낱말이나 어구를 뜯어 본다.
 
▶LG가 모처럼만에 공격 야구를 선보이며 4연패 늪에서 헤어났다.
▶주식 투자자들이 모처럼만에 활짝 웃었다.
 
‘모처럼만에’는 ‘오래간만에’와 ‘모처럼’을 섞어 만든 듯한 말이다. 부사인 ‘모처럼’ 자체가 ‘아주(일껏) 오래간만에’ ‘벼르고 별러 처음으로’란 뜻이니까 ‘만에’를 덧댈 필요가 전혀 없다. 덧대면 ‘오래간만에 만에’가 된다. 언제나 ‘모처럼’만 써야 한다. ‘모처럼’은 “모처럼의 긴 휴식을 맞아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모처럼의 간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에서처럼 명사적으로도 쓴다.
‘우연찮게’는 ‘모처럼’만에 보다 사용이 까다롭다.
 
▶우연찮게 청와대의 전산 일을 맡게 됐다.
▶우연찮게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쥐꼬리처럼 적은 생활비 때문에 아내의 구박에 시달리게 된다.

‘우연찮다’는 ‘우연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우연하게’라는 뜻으로 ‘우연찮게’를 사용할 경우에는 ‘우연하게’나 ‘우연히’로 바루자.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우연찮다’가 올라 있다.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라는 아리송한 풀이를 달고서.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은 ‘우연찮다’를 ‘우연하지 아니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예문으로 든 “비밀이 우연찮게 드러났다”를 ‘비밀이 드러난 게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다’는 뜻으로 썼는지, ‘우연히 드러났다’는 말을 하려 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우연찮다=우연하다’로 알고 있는데, 일부 사전에선 ‘우연하지 아니하다’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으니 헛갈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생각은 복잡하게, 결론은 단순하게’의 원칙을 적용하는 게 좋다. 우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찮다’를 달지 말고 그냥 ‘우연하다’를 쓰자. 우연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모호한 ‘우연찮다’를 써서 착오의 가능성을 남기지 말고 ‘우연하지 않다’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고 풀어 쓰든지 아예 다르게 표현하자. 글은 언제나 명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