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바야흐로 破壞의 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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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파괴(破壞)라는 말은 원래 부정적이다.가령 흉악범에 의한 부녀자 공격으로 가정에 불행이 찾아왔을 때 「가정파괴」라는 말을쓰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그러나 요즘에는 파괴란 말이 긍정적으로 아주 광범위하게 쓰인다.「파괴는 건설의 어 머니」처럼 제한된 범위에서만 긍정적으로 쓰이던 이 말이 이제는 울타리를 벗어났다.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파괴돼야 정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몇년전부터 「가격파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대폭적인 상품가격 할인이 상시 이뤄지는 상점이 등장하면서부터다.이 할인상점들은 요즘 24시간 영업까지 하면서 경쟁에 불을 댕기고 있다.그래서 유통파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얼마전엔 기업의 「학력파괴」가 시작됐다.4년제 대학졸업이라는입사조건이 수십년만에 철폐된 것이다.기업들은 나아가 「인사파괴」를 서두르고 있다.연공서열(年功序列)이 무시되고 연봉제 임금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근무제도도 다방면으로 파괴되고 있다.출.퇴근시간을 전통적인 「9 to 5」에서 「7 to 4」로 바꾼 기업이 많다.컴퓨터통신의 발달로 재택근무까지 실험되고 있다.놀랍기는 하지만 합리와 혁신 추구는 원래 기업의 본질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일부 기업과 관공서에서 시험 실시에 들어간 토요 전일(全日)근무제는 획기적인 파괴다.반(半)공일을 없앤다는 측면보다격주로나마 주(週) 5일근무제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그렇다.곧 모든 관공서가 이 제도를 채택하면 주 5일근무제 의 전면 실시도 멀지 않을 것 같다.유럽에선 이미 4일제 근무가 도입되고 있다. 대학 수석합격은 책상물림의 차지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것도 재미있다.올해 서울대 인문계 수석합격자 장승수(張承守)씨(군 ?)는 고교 졸업후 6년만에,세번 낙방하고 네번만에 합격한 청년이다.그는 공사판에서 포클레인 조수를 시작으로 물수건 배달,조경 공사장 인부 등 일곱가지의 막노동을 한 사람이다.그러면서도 조금도 그늘진 구석이 없는 젊은이다.
모든 것은 유전(流轉)한다.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당신은 똑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갈 수 없다고 선현(先賢)들은말한다.미래학자들은 생활형식의 자그마한 파괴가 혼란을 불러오지만 그것은 『매혹적인 새로운 문명을 맞이하기 위 한 진통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최근 이색적인 파괴 두가지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하나는 공사(空士)의 여사관생 모집.정원의 10%인 20명을 여학생으로 뽑겠다는 것이다.역시 공군은 멋져.부디 소머즈같은 철(鐵)의 여인들이 많이 탄생하기 바란다.
두번째는 대통령의 두발(頭髮)파괴.밀리터리 룩으로 치켜 깎는변화가 아니다.흑발 염색을 중단한 것처럼 TV에 비친다.본래의백발이 살아나오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머리 색깔 파괴다.민주화투쟁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대통령은 늙어지는 것인가,젊어지는 것인가.
무엇보다 기대되는 파괴는 지금 한창 진행중인 김일성(金日成)일가의 「북한 파괴」다.김일성은 1년반전 스스로 돌연사함으로써북한파괴를 시작했다.최근 그의 아들 김정일(金正日)은 전(前)부인을 망명시킴으로써 그 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 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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