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없지만 포기 또한 없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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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베이징 올림픽을 향한 ‘블레이드 러너’의 도전이 쉽지 않다. ‘규정’의 벽은 넘었지만 ‘기록’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의족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2·남아공)가 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육상대회 남자 400m 결승에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레이스를 펼쳤다. 그는 이날 선두로 달리다가 마지막 직선주로 100m에서 3명에게 추월당해 4위(47초78)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 A기준기록(45초55)에 2초 이상 뒤진다. 이 종목 최고기록이 46초36인 그로서는 기준기록 통과가 힘들어 보이지만 도전을 멈출 생각은 없다.

선천적으로 종아리뼈가 없는 피스토리우스는 한 살 때부터 양 다리에 의족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테니스·럭비·수구·레슬링 등을 즐긴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2004년 럭비 경기 중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육상으로 전향했다. 육상에서도 재능을 보인 그는 장애인 육상 100, 200, 400m 세계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처음 비장애인 육상대회에도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모두 출전하려던 피스토리우스의 꿈은 “(그가) 기록 향상에 도움을 주는 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비장애인 선수들의 항의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받아들이면서 원천봉쇄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희망이 되살아났다.

‘규정’의 한계를 넘어선 피스토리우스의 숙제는 실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것이다. 현실적인 목표는 400m보다는 1600m 계주 출전권 획득이다. 1600m 계주는 4명의 주자가 400m씩 뛰지만 팀은 6명으로 꾸려지기 때문에 자국 선수 중 6위 안에 든다면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 그의 코치인 피트 판 질은 “다른 선수 기록을 봐야겠지만 46초1~2에 뛴다면 6명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스토리우스는 11일 로마 골든갈라 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향한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 그는 “(밀라노 대회를 앞두고) 한 달 반 정도밖에는 훈련할 시간이 없었다”며 “로마에서는 더 좋은 경기를 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상 남자 400m 세계기록은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마이클 존슨(미국)이 세운 43초18이며, 한국 기록은 1994년 전국육상선수권에서 손주일(당시 경찰대)이 세운 45초37이다. 한국은 기준기록에 드는 선수가 없어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이 종목에 출전하지 못한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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