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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세대 갈등의 골 좁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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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하고 뒤풀이로 노래방에 갔다. 돌아가면서 한두 곡씩 불렀는데 대부분의 레퍼토리는 우리가 20대 전후였던 1970~80년대의 인기곡들이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최근의 신곡을 멋들어지게 불렀는데 그들은 야유와 부러움을 동시에 받았다. 왠지 그런 신곡이 우리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 세대별 살아온 환경 너무 달라

탄핵 이슈 외에 별다른 쟁점이 없었던 이번 총선에 뜻밖에 세대 간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실언에 대한 정치적 공방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세대 갈등은 2002년 대통령 선거 과정 이후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얼마 전 있었던 우리 사회의 어른이라 할 수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에 대한 비판 논란도 이러한 세대 갈등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별로 각기 다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친구들이 요즘 젊은이들과는 달리 2004년이 되어도 여전히 70~80년대의 노래에 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세대별 정치적 성향과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50대 이상의 세대는 분단, 한국전쟁, 뒤이은 냉전과 지독한 가난을 경험한 세대다. 미국의 지원없이는 국가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었고 '중공 오랑캐'와 '북괴'를 물리쳐야 한다는 반공이념은 당시 국민적 합의였다. 그러나 70~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는 반공이 통치수단으로 악용되었던 어두운 시절을 기억한다. 많은 동료 학생과 민주 인사들이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고문과 고통을 겪었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들 세대 간 반공을 바라보는 인식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지금 강의실에서 내가 만나게 되는 학생들은 80년대에 태어난 학생들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여건에서 성장해 왔고, 이들이 세상 물정을 조금이라도 알기 시작했을 무렵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 세대가 주목한 것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그리고 박찬호와 박세리 등 국제 사회에서 성장한 우리의 모습이었다.

서로 살아온 경험이나 환경이 이처럼 다른데 모든 세대가 동일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또 의식도 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 성장을 통해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곳에서 세대 간의 시각의 차이는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처럼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까닭은 각 세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이 옳다고 강변하고 관철시키려고 한다. 나이든 세대는 자신들이 이룩해 놓은 과거의 업적과 논리를 강요하고 싶어하고,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주장이 철지난 것이라고 일축하려 한다. 그리고 세대 갈등은 정당 간 정략적인 정치공방을 통해 더욱 확대 재생산돼 왔다. 이와 같은 세대 간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경험과 환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념과 인식의 다양성을 상호 존중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겪은 경험만이 옳고 정의롭다고 주장하며 다른 세대의 경험과 인식을 무시하려 든다면 세대 간 갈등은 앞으로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 정치가 갈등 더 부추겨서야

지난주 우리 학과 학생들의 수련회에 다녀왔다. 마지막 날 밤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이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50년도 더 되었을 옛날 가요였다. 많은 학생이 함께 따라 부르며 흥겨워했다. 요즘 애들도 이런 노래를 부르는구나, 나는 놀랐다. 젊은 세대라고 요즘 노래만 부르는 것도 아니고, 나이든 세대라고 모두 옛날 노래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지역으로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던 정치가 이제 세대 간 갈등마저 부추기고 있다. 세대 간 다른 삶의 여정이 갈등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의 공유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