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統長 직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신(維新) 직후였으니까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나이 서른을 넘긴지도 몇 해가 지났건만 마땅한 혼처가 없어 고민하던 한 중견 소설가에게 중매가 들어왔다.참한 규수(閨秀)였고 서로가 흡족해 했다.한데 소설가에게는 불만스러운 일이 한가지 있었다.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동장이면 동장이고 반장이면 반장이지 왜 하필 통장 딸이람.
』 그 규수가 통장의 여식(女息)임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데는 소설가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었다.그는 반(反)유신.반체제 문인 그룹의 선봉장격이었고,지방자치 실시 유보를 명시한 유신헌법 부칙에 따라 동.이(里)등 최하위의 지방행정구역은 독 재체제의 손발이 돼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데 일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지론인즉 동장은 별정직이기는 하지만 공무원 신분이며반장은 봉사직에 불과한데 비해 통장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보잘것없는 수당까지 받아가며 지역민방위대장을 맡는등 지역주민들의 실생활과 매우 밀착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장인 될 분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 통장을 그만뒀다든가,어쨌다든가.하여튼 그소설가는 당시의 통장 따님과 결혼해 아들.딸 낳아 잘 살고 있다. 비단 그 소설가의 생각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통.반장제도」에 대해 그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사람들이 많았다.관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동네 머슴」의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전.출입신고 때마다 일일이 통.반장 확인 절차를 거치게 하는 등의 역기능적 측면에다가 특히 선거철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여권(與圈)의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한 모습을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후에도 동장.통장은 여전히 구청장.동장이 임명하도록 돼있다.일부 지역주민들 사이에 동장.통장이 주민들의실생활과 밀착돼 있으니만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억지는 아니다.이미 9 2년 11월 울산에서 주민들이 5명의 민선통장을 선출한데 이어 엊그제 서울상도동에서도 2명의 민선통장이 뽑혔다.하지만 시.도의 조례(條例)에는 아직 「임명」으로 규정돼 있어 말썽의 소지도 없지 않다.선거도 좋지만 차제에 「통.반장 제도」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