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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가는 낙에 사는 시골 할머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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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신경통이 싹 없어졌다 아이가. 손주들 용돈 주고, 담뱃값도 벌 수 있으니 얼매나 좋노.”

1일 남강변인 경남 의령군 의령읍 대산리 ‘의령 친환경 골프장’. 전화자(68) 할머니는 무당벌레가 날아다니는 잔디밭에서 호미로 풀을 캐며 흥이 나 있었다. 옆에서 호미질하던 정덕년(72) 할머니도 “마을회관에서 빈둥거리면 뭐하노. 적당히 일한 뒤 친구들과 도시락 까 먹으니 건강에도 좋고 매일 소풍 나온 것 같다”며 거들었다.

이날 제초작업에 나선 할머니 부대는 50여 명. 대부분 골프장 주변 마을에서 왔지만 20㎞쯤 떨어진 칠곡면에서 온 할머니도 있다. 제초 작업반에 등록해 놓은 할머니 숫자는 108명. 개인 사정이 있는 할머니들을 제외하고 매일 50∼60여 명씩 출근한다.

이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제초작업 반장 정우갑(62)씨는 할머니들의 전화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제초작업을 하지 못할까 안달이 난 할머니들이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 온다”며 웃었다.


골프장이 들어서는 곳마다 주변 마을의 반대 때문에 골치를 앓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전혀 반대다. 농약을 치지 않아 환경오염이 전혀 없는 데다 마을 주민들이 제초작업에 참여하면서 인건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주변 마을들의 회관은 텅 비어 버렸다.

이 골프장에는 4월부터 지금까지 제초작업에 연인원 3000여 명이 참여했다. 인건비로 1억여원이 나갔다. 할머니들은 일당 3만900원을 받는다. 한 달 평균 20여 일쯤 일한 할머니들은 60여만원쯤 벌어 간다. 의령군은 올 한 해 인건비로 2억여원을 책정해 놓고 있다.

경남 의령군의 친환경 대중 골프장에서 마을 할머니들이 호미로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친환경 골프장을 표방한 이곳에서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친환경 골프장 실현=잡초는 제초제를 한 방울도 뿌리지 않고 할머니 부대를 출동시켜 제거한다. 호미로 제거가 어려운 클로버 군락은 아예 삽으로 파내 버린다. 잔디병의 에이즈로 불리는 ‘라치패취병’ ‘피시움블라이크병’은 천적과 미생물을 이용할 계획이다. 거세미나방과 잔디나방, 굼벵이 등 해충은 흙에서 채취한 병원성 선충(蟬蟲)으로 방제를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경상대 응용생물환경학과 추호열(57) 교수가 기술지도를 맡고 했다. 추 교수 팀은 잔디병 발생의 원인인 토양의 질소와 수분 함량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지도해 발병을 줄인 뒤 일단 발생하면 생물방제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초기에 찾아내 파내 버리기 위해 직원 10여 명으로 구성된 잔디병 순찰반이 골프장 구석구석을 매일 돌고 있다.

김채용 의령군수는 “지역 경제 회생과 환경보호, 골프장 주변 마을 주민소득 증대의 세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안을 모색한 끝에 처음 만들어진 청정 골프장”이라 고 설명했다. 의령군은 연간 4만∼5만여 명이 골프장을 찾아 25억여원의 매출을 올려 순수익 10억여원을 기대하고 있다.

의령=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의령 친환경 골프장=남강둔치인 경남 의령읍 대산리 23만5262㎡(7만1166평)에 세워진 9홀짜리 대중골프장. 의령군이 지난해 6월 정부로부터 ‘친환경레포츠 특구’로 지정받아 20억원으로 착공했으며 이달 중순 개장할 예정이다. 정부가 상수원인 낙동강 상류여서 난색을 표하자 ‘농약 0’를 제안해 허가를 받았다. 이용료(18홀 기준)는 4만5000(평일)∼5만5000원(공휴일). 예약은 홈페이지(golf.uirye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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