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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0만리>14.태국 뽕남론.도이창 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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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탐사팀을 태운 미니버스는 뽕남론 라후(셀레)족 마을로 가기 위해 치앙라이 남쪽을 향해 달린다.미니버스가 광 마을과 비엥빠빠오의 중간 지점쯤 왔을까.창문 밖을 바라다 보면서 가고 있던 김대원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뜬다.
『산불이 났어.』 솟아오르는 연기가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주위의 산들이 불타고 있다.이곳에는 산불이 자주 난다.산불이 심할 때는 시계가 가려 근처 비행장의 비행기 이.착륙도 안된다.그러나 그것은 산불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라후.아카. 리수족들이 화전을 일구느라고 산을 태우는 것이었다.
황금의 삼각지대 일대의 첩첩산중에 사는 소수 민족에게는 경작이 가능한 토지가 없다.그래서 4월이 되면 온 산에 불을 지른다.산을 태우고 난 다음 우기(雨期)한철에 벼를 심는데 비료도농약도 주는 일이 없다.따라서 수확이 제대로 될 까닭이 없다.
죽을 힘을 다해 농사를 지어봤자 반년 양식밖에 되지 않는다.
라후.리수.아카족들은 하루에 밥을 두끼밖에 먹지 않는다.양식이 떨어지면 산짐승을 잡아 먹기도 하고,풀뿌리를 캐 먹어가며 목숨을 연장한다.
필자가 이 라후족 마을을 찾아 다닌지도 벌써 햇수로 4년,이마을에 소리꾼 할아버지가 있어서였다.할아버지는 라후족으로는 드물게 장수하는 편이어서 나이가 70세쯤 되었고 빼빼마른 노인이다. 『어브으자(어디보자).』 필자가 대나무집을 찾아가면 라후족 할아버지도 필자를 반갑게 맞아 준다.라후족 할아버지는 필자가 왜 자기를 찾아 왔는 지를 알기 때문에 언제나 필자가 나타났다 하면 목청을 가다듬는다.뒤이어 세살쯤 된 손자놈을 꼭 껴안은 할아버지의 목에서 단조(短調)의 외가락이 끊어질듯 이어진다. 『어여,어여 어찌를 할거나 너를 두고 나만 떠나왔네/조실부모하고 형제들은 전쟁에 나가 죽고 자식들은 굶어죽고/나는 중국 사람에게 끌려와 만리타향에 와 있네/어여,어여 어찌를 할거나….』 우리나라 노래와 빼닮은 할아버지의 노래는 만리타향에 포로로 끌려온 지아비가 고향에 홀로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는내용이다.그러나 노랫 가락에서 풍기는 정서는 그 이상이다.도대체 할아버지는 피를 토하는 것같은 소리를 내면서 무슨 생 각을하고 있는 것일까.
탐사팀의 중앙대 음대 전인평 교수는 최근 할아버지가 부른 라후족 노래가 우리나라 강원도 지방의 정선 아리랑 가락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노래를 듣고난 전교수는 한동안 말을 잃고 먼 산을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있었다.그리고 착잡한 심정 을 이렇게 토로했다.
『오갈데 없는 우리나라 노래입니다.그나저나 이 사람들을 어떡하지요.』 탐사팀은 필자와 소리꾼 할아버지 사이의 우정 덕분에배타적인 마을 사람들의 양해를 얻어 제사터를 향해 언덕위로 올라갔다.도중에 탐사대원들은 우리와 똑같은 라후족의 생활 모습을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공기놀이.팽이치기.팔방놀이를 하는가 하면 남자들은 팔짱을 끼고 여자들은 아기를 띠를 받쳐 등에 업는다.팔짱을 끼거나 아기를 등에 업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속이다.그러나 탐사팀을 진짜 놀라게 한 것은다음 순간이었다.제사터에 들어선 탐사대원 들은 마침내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서버리고 말았다.
『앗! 저 색동옷.』 탐사대원들이 색동옷을 보고 그처럼 놀란것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어렸을 때 설날이면 저런 색동옷을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어디 색동옷 뿐인가.라후족 복장은 역사의기록이나 고분벽화와 너무도 닮아있다.여자옷은 머리수건,가장자리에 굵 은 선을 두른 도포처럼 생긴 옷,다리에 두른 행전,그리고 남자옷은 저고리와 핫바지로 돼있었다.
탐사팀이 감동에 휩싸여 말을 잃고 있는데 드디어 제천의식이 시작된다.음악소리가 나고,온 마을사람들이 제단 주위를 빙글빙글돌며 춤을 춘다.그런데 특이하게 마을사람 가운데 두 손으로 자기 귀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왜 그럴까.제 천의식때 부르는 노래는 인간이 들어서는 안되고,오직 하느님만이 들어야 하기때문이다.필자는 문득 라후족이 하는 저 제천의식이 부여의 영고(迎鼓),예의 무천(舞天),그리고 고구려의 동맹(東盟)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그렇다면 잃 어버린 역사,겨레의 혼을 그들을 통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라후족 저들은 누구인가.제천의식을 보는 탐사대원들은 감동되어 어느덧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탐사팀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태국 북부의마지막 탐사코스 리수족 마을로 향한다.뽕남론에서 메수아이를 거쳐 도이창 리수족 마을까지는 66㎞.도이창산으로 오르는 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산,산,산뿐이다.지프는 2천㎞가 넘는 가파른 고개턱을 올라가기도 하고,천길 낭떠러지를 따라 내려가기도 한다.구름을 발밑으로 하고 하늘아래 첫동네를 찾아 가는 기분이었다.
탐사팀이 깊은 산골 마을에 들어서 처음에 본 것은 실뜨기.탐사대원들은 우르르 몰려가 예쁘고 귀엽게 생긴 리수족 소녀들과 실뜨기를 해 보았다.우리가 어렸을 때 하던 실뜨기 방법과 똑같아 막힘 없이 실을 떠주고 받았다.
실뜨기를 하고 난 다음 탐사대원들은 시종일관 두 눈을 두리번거리며 비좁은 마을 길을 더듬어 오른다.그때 마을의 돌담장 밑에 무엇인가가 있었다.누가 버렸는지 밥.반찬.지푸라기.헌 옷가지들이 보였다.바로 우리나라의 거리제와 같은 것이 다.옛날 우리나라 습속에 가족 가운데 중병이 든 사람이 있으면 밤중에 몰래 환자의 헌 옷가지와 음식물을 지푸라기에 싸 길에다 놓아두는일이 있었다.이것은 환자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하는 일종의 무속이었다. 라후족,리수족,베트남의 메콩 델타에서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거리제를 지낸다.그들도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밤중에 환자의 헌 옷가지와 음식물을 길 한 복판에다 놓아둔다. 탐사팀이 마을 중턱쯤에 있는 제법 규모가 커 보이는 추장집에 들어서니 60대의 인자하게 생긴 추장이 탐사팀을 반기며자리를 권한다.추장집 마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마을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그런데 모여든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처녀들이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1백가구가 겨우 넘는 규모인데 50~60명의 처녀들이 외부에서 남자들이 찾아왔다고 하니까 떼를 지어 몰려든 것이다.
『와-.』 총각인 김대원은 숨이 막히는지 말도 못하고 감탄사만 내지른다.
『그런데,왜 시집을 안갔오?』 장교수는 점잖게 물어본다.
『남자가 있어야 가지요.다른 마을 총각들은 모두 도시로 일나가 없고 이 마을 총각들은 있어 봤자 같은 성씨라 결혼할 수가없어요.』 이 마을이 시집 못간 처녀들로 우글거리는 이유를 알만했다.그때 또 총각 김대원이 군침을 삼키며 한마디 한다.
『아깝다.』 글.사진=김병호 박사 유앤FAO 아프가니스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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