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탐험! 세계의 名국수] 3. 베트남'포'- 태국'팟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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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쌀국수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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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베트남 호치민 시내의 한 거리. 오전 7시를 갓 넘은 시간임에도 쌀국수를 파는 행상들이 벌써 길가 여기저기에 판을 벌이고 있다. 양쪽 바구니에 쌀국수 재료를 나눠 담은 '가인(한쪽 어깨에 메는 천칭 저울을 닮은 베트남식 지게)'마다 쪼그리고 앉아 쌀국수를 후루룩 빨아들이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요리조리 피해 걷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노란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인은 이것저것 쌀국수 재료를 사 비닐봉투에 담아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장면 2

이틀 전 방콕 시내의 밤거리. 대로변 인도를 따라 간이 식탁이 줄지어 있다. 한쪽엔 큰 알루미늄 통을 실은 손수레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묵.고기.채소 등을 골라 손가락질해 가며 주문하자 잠시 뒤 식탁에 쌀국수가 오른다. 식탁에 앉은 사람 중에는 엄마.아빠랑 함께 나온 아이들도 보인다. 한 아이는 빨대를 꽂은 코코아를 물 대신 마신다. 한 팀이 먹고 일어서면 다른 가족이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오후 11시가 넘어 손수레의 쌀국수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베트남과 태국 사람들이 먹는 쌀국수는 간식이나 별식의 개념이 아니다. 밥만큼이나 많이 먹는 주식이며, 아침.점심.저녁 어느 때든 가리지 않는 일상식이다.

두 딸의 엄마로 하노이 부동산개발회사에서 근무하는 이옌(33)은 "남편과 함께 출근하면서 노점상에서 쌀국수를 사먹는 게 일상적인 아침식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어머니께서 동네 가게에서 쌀국수를 사다 먹인다"고 덧붙였다.

이옌의 일주일 21끼니 중 쌀국수로 해결하는 것이 절반 정도다. 나머지 절반은 쌀밥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중화면.라면 등 다른 국수를 맛보기도 한다고 했다.

방콕에서 무역업을 하는 뭉카라룽시(32) 역시 "회사 근처의 음식점에서 쌀국수로 아침을 시작한다"며 "주말 점심 때 어머니가 오리고기를 삶아 준비한 쌀국수를 특별식으로 먹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이처럼 쌀국수가 친숙한 것은 일년에 4모작을 할 수 있는 쌀농사가 바탕이 된 겁니다. 그러나 찰기 없이 길쭉한 안남미로 지은 밥의 단조로움을 쌀국수나 라이스페이퍼로 극복하면서 그들만의 면식(麵食)문화로 발전시킨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국내 면.소스 전문기업인 면사랑 정세장 사장의 설명이다.

베트남과 태국 현지의 쌀국수 면발은 우리나라 칼국수처럼 납작하고 넓은 것에서 냉면처럼 가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여기에 소.돼지.닭 등의 뼈나 고기를 우려낸 국물로 말아낸다. 고명으로 살코기는 물론 간.창자 등 내장을 올리기도 한다.

베트남의 쌀국수와 태국의 쌀국수의 내용이나 모양새가 똑같지는 않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다녀갔다는 호치민 시내 '포 2000'쌀국수집의 면은 3 ~ 5㎜ 두께의 생면인 반면 방콕 인근에 있는 '담넌 사두억'수상시장에서 파는 것은 말린 국수를 다시 익힌 1㎜ 정도의 가는 국수였다. 입 안의 촉감에 있어서도 생면인 베트남 쌀국수는 부드러운데 비해 태국의 것은 찰진 느낌이 강했다.

조리 방법에 있어서도 다른 점을 보인다. 베트남 쌀국수는 육수에 말아먹는 '포(Pho)'가 대표적이다. 태국에서는 쌀국수를 볶은 '팟타이'를 주로 먹으며 국물이 있는 '쿠웨이 티아오'도 즐겨 찾는다.

베트남은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만큼 쌀국수도 남부와 북부의 특색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남부 호치민의 쌀국수집에선 생숙주 등 향신 채소 두세 가지를 식탁마다 가득히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북부 하노이에선 채소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쌀국수에 고기 덩어리를 많이 얹어 내준다.

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전자부품 중개상을 하는 이순구씨는 "전반적으로 베트남 쌀국수는 소박하고 서민적인데 비해 태국의 쌀국수는 화려하면서 매콤.달콤.새콤한 맛이 강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방콕.호치민.하노이=글.사진 유지상 기자

*** 맛있게 드시려면…

뜨거운 쌀국수가 나오면 먼저 생숙주를 국수 아래 넣고 레몬과 청양고추를 넣는다. 국물에 매콤한 칠리소스와 달콤 고소한 해선장소스를 입맛에 맞게 뿌린다. 취향에 따라 고수나 민트를 넣어 먹는다. 소스 그릇에 칠리소스와 해선장소스를 알맞게 섞어 고기나 양파 절임을 찍어 국수랑 먹어도 색다른 맛이다. 오른손에는 젓가락으로 국수를, 왼손에는 스푼으로 국물을 떠올려 함께 먹으면 더 맛나다.

▶ 태국의 볶음국수 팟타이

*** 한국의 '포', 베트남인이 먹어봤더니 …

하노이에서 만난 라이따이한 희우(무역상.32)씨의 말 "한국에서 5년간 생활하면서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포(Pho)를 자주 먹어 봤어요. 그런데 '포'라고 하면서 묘하게도 면은 태국 국수를 쓰더라고요. '포'란 단어엔 젖은 생국수란 의미가 있거든요. 베트남 쌀국수는 젖은 생국수로 말아 냅니다. 돼지고기.닭고기.해산물을 이용한 국수는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쇠고기 쌀국수가 주종인 것도 약간 불만스러웠어요. 고수 등 향신채소의 사용이 적고, 라임 대신 레몬을 주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의 베트남 쌀국수는 한마디로 베트남.태국.한국의 혼재된 것입니다."

*** 압구정동 쌀국수街

국내에도 베트남 스타일의 쌀국수를 먹을 곳이 많이 등장했다. 체인화된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들이 여기 저기 문을 열었고, 다양한 쌀국수를 취급하는 태국음식 전문점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 서울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건너편 골목에 '포(쌀국수) 스트리트'로 통하는 지역이 있다. 로데오거리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인데 쌀국수 전문점이 무려 여섯 곳<약도 참조>이나 몰려 있다.

여섯 군데 모두 점심시간에 문을 열었다가 다음날 동이 트기 전에 문을 닫는다. 점심.저녁시간 외에도 심야나 새벽에 '한잔'한 속풀이 손님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은 쇠고기 쌀국수를 기준으로 7000원 내외. 곱빼기는 1500원을 더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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