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같은 영어 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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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L 환경에서 의사소통의 한계
  영어를 제2언어(second language), 즉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영어의 바다에 빠지기 쉽다. 이런 나라들은 공식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를 잘한다는 홍콩, 필리핀, 싱가폴 사람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모델로 등장했던 핀란드의 경우는 TV 프로그램의 30% 정도가 영어로 방송되고 있어 영어에 노출되는 양이 상당하다.
  영어교육학자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상황에서는 영어 사용이 일상 생활의 일부이므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환경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상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어가 시험에 필요한 과목 정도로만 여겨져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ESL 상황과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EFL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

영어 습득, 임계량 도달이 중요하다

  영어 교육에서 영어노출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임계량(Critical Mass)’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임계량이란 핵분열 물질이 연쇄반응을 할 수 있는 최소의 질량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다.
  영어교육에서 임계량을 얘기하는 이유는, 영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서도 일정 기간 내에 일정량 이상의 공부량(Exposure)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우리말을 배울 때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우리말에 노출돼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이가 우리말을 배울 때 임계량에 도달하면, 간단한 단어를 말하는 단계에서 자기 의사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커밍스(Cummins)의 연구에 따르면 ESL 상황에서 학습자가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갖는 데 3~4년, 상당한 수준의 인지적·학문적 언어 숙달능력을 개발하는 데 7~8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노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미스(Smith)는 어린이들이 모국어로 읽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9000시간 이상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영어교육에 필요한 임계량이 원어민(Native Speaker)과 함께 학습하는 영어교과 시간 기준으로 계산해 4300시간 정도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제시하고 있는 총 영어교육 시간은 730시간이다.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임계량과 비교하여 보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노출 시간이다. 이 때문에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지 않고 학교 수업만으로 영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또 언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서 조금씩 오래 하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다. 연못에 던지는 조약돌을 영어공부라고 생각해보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발전만 있을 뿐 우리가 기대하는 폭발적인 반전과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윗돌을 연못에 던지면 어떨까? 하루에 30분씩 300일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하루에 3시간씩 두 달을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반복적인 노출이 말하기 능력 키운다
  아이가 자유롭게 영어로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하기 전까지의 기간, 즉 ‘침묵의 시기(silent period)를 깰 수 있는 충분한 영어노출 시간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영어소리의 흐름을 먼저 식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어학습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주 영어를 의미 있게 반복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 있는 반복은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이의 생활 속에 영어가 녹아들지 않으면 영어 정복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영어소리를 듣고 글의 주제 파악에 신경을 쓰고, 그 후 내용을 파악하고 소리 내어 따라 하면서 글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원활히 의사소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성환 팀장
튼튼영어 연상력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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