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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요즘 교회서 액세서리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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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김응국 목사는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당신 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가 계신다. 당신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이 있는가. 당신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가. 당신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행실이 있는가를 보라”고 말했다. [사진=김상선 기자]

“많은 교회에서 ‘십자가’의 의미가 상실됐죠. 액세서리가 되고 만 거죠” 2000년 전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었다. 이후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됐다. 교회의 지붕에도, 예배당의 강단에도, 성경책 표지에도, 기독교인의 목걸이에도 ‘십자가’가 달려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생명의 숨결이 흐르는가를 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기독교출판사 ‘규장’의 편집국장 김응국(54) 목사다. 그가 최근 책을 냈다. 제목이 『십자가』(규장, 1만 원)다. 김 목사는 서문에서 “우리는 어느새 유대인들처럼 십자가를 꺼리는 자들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3일 서울 양재동의 출판사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십자가’를 물었다.

-왜 ‘십자가’를 말하나.

“홍수가 났을 때 제일 귀한 게 뭔가. 물이다. 마실 물이다. 십자가도 그렇다. 지금 교회에는 십자가가 넘친다. 십자가의 홍수다. 사방에 널린 게 십자가다. 그런데도 ‘마실 십자가’가 없다. 우리의 목마름을 축여주는 ‘십자가’가 없다.”

-이유가 뭔가.

“‘십자가’에서 차를 떼고, 포를 뗐기 때문이다. 부담스런 요소를 다 제거한 ‘십자가’를 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가 말랑말랑해졌다. ‘솜사탕 십자가’가 된 것이다.”

-그럼 본래의‘십자가’는.

“본래의 십자가는 ‘나의 죄가 처리되는 장소’다. 그래서 ‘나’라는 죄로 똘똘뭉친 자아를 십자가에 올려야 한다. 거기에는 ‘회개’가 있다. 그걸 통해 자아를 죽게 한다. 그렇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선 진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를 붕어빵의 빵틀에 비유한다.”

-빵틀이라니.

“사람은 모두 밀가루 반죽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를 사해 붕어빵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반죽의 상태에선 결코 ‘붕어빵’이 될 수 없다. 크리스천도 마찬가지다. ‘십자가’라는 빵틀을 거치지 않고선 절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빵틀’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왜 그런가.

“죽기가 싫기 때문이다. ‘빵틀’은 고온과 고압이 가해지는 곳이다. 그곳은 ‘나’라는 자아가 죽는 곳이다. ‘십자가’는 예수님 혼자서 죽는 곳이 아니다. 나의 자아도 함께 죽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질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이 될 수가 있다.”

느닷없이 김 목사는 “기독교 복음의 가장 무서운 적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독교 복음 최대의 적은 탈레반도 아니고, 이슬람 교도도 아니다”고 했다. 다름 아닌 ‘자아’라고 했다. “교회에선 선교를 위해 외국에도 많이 나간다. 그런데 따져보라. 가장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나라가 어딘가. 그건 바로 ‘자아의 나라’다.”

-‘자아’가 왜 강적인가.

“인간이 ‘자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사랑하면 왜 안되나.

“출판사에서 매일 아침 직원들과 ‘예배’를 드린다. 어느 날 한 직원이 그러더라. 지금껏 나는 ‘교회다니는 사람’이었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십자가는 예수 혼자만 죽는 십자가인 줄 알았다. 왜 자아가 죽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 왜 죄인 줄도 몰랐다고 말이다. 그건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나오는 소리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31절)’라고 했다. ‘자아’가 죽는 곳, 오직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한 뒤 26년 동안 ‘십자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이해가 안 됐다. 운전학원에서 운전 대신 노래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안 온다. 수능 영어학원에서 영어 대신 웅변을 가르치면 사람들이 안 온다. 그런데 기독교가 ‘회개’와 ‘죄사함’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데 왜 사람들이 기독교로 모이는 걸까. 그게 이해가 안 됐다.” 그는 ‘예수의 고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요즘 예수의 수난절을 보라. 예수의 수난에 대해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기간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십자가의 본질에서 멀어졌다.”

-그럼 어떠해야 하나.

“예수님처럼 자아의 손바닥을 관통하는 못 자국, 자아의 옆구리를 관통하는 창 자국을 느껴야 한다. 그건 ‘자아’가 죽을 때 느껴지는 거다. 그렇게 ‘자아’를 부정해야 한다.”

-서점의 기독교서적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자아 긍정’‘자아 계발’서적이 붐이다.

“뽕잎이 실크가 되려면 누에의 뱃속을 거쳐야 한다. 뽕잎 입장에선 뽕잎이 죽어야 실크가 되는 거다. 그런데 뽕잎이 자아를 긍정하고, 자아의 계발에만 매달리면 뽕잎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십자가’도 없고, ‘부활’도 없다. 그런데 작금의 기독교를 보라. ‘자아를 긍정하라’‘자아를 계발하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정글의 논리를 부추긴다. 그걸 보면 슬픔이 치솟는다.”

끝으로 김 목사는 지금은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분노의 종교개혁’은 아니라고 했다. “‘분노의 종교개혁’은 늘 실패한다. 반면‘눈물의 종교개혁’은 성공한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 ‘눈물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매일 죽이는 눈물의 종교개혁 말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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