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가슴을 ‘할켰다’(?)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사랑하기에 네 곁을 떠난다”는 이별의 미학. 이 말은 남아 있는 사람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의 이기심일 수 있다.

“눈물을 머금은 채,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그의 말은 내 귓전을 파고들며 가슴을 할켰다”에서처럼 ‘할퀴어’를 줄여 ‘할켜’로 쓰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러나 ‘할켜’는 줄여 쓸 수 없는 것을 잘못 줄인 경우다.

마음의 상처나 천재지변, 추위 등이 ‘휩쓸거나 스쳐 지나다’를 뜻하는 단어는 ‘할퀴다’이다. ‘할퀴다’에는 ‘손톱이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어 상처를 내다’란 뜻도 있다. 이 단어는 ‘할퀴고, 할퀴니, 할퀴어’ 등으로 활용된다.

한글맞춤법 준말 항목을 보면 줄여 적을 수 있는 경우를 여러 항목에 걸쳐 규정해 놓았지만 “‘ㅟ’ 다음에 ‘어’가 올 때 줄여 쓸 수 있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할퀴어’를 ‘할켜’로, ‘할퀴었다’를 ‘할켰다’로 줄여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 “추위가 온몸을 할퀴었다”처럼 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 형태로 잘못 쓰는 말이 ‘사겼다, 바꼈다’이다. 이 또한 줄여 쓰지 말고 ‘사귀었다, 바뀌었다’처럼 적어야 한다.

한규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