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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주말 산책]고양이 친구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호 39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회원인 인터넷 카페에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쏟아 부은 지 2년이 다 돼 간다. 밥 먹으면서 군것질하면서, 심지어 졸면서도 카페를 고샅고샅 헤매고 다녔다. 그뿐인가. 그곳 벼룩시장을 통해 거래하느라 수원이니 의정부니 성남이니, 허구한 날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고, 그러자니 몸도 곤하고 시간을 낼 수 없어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그 좋아하는 영화도 못 보고, 헬스장도 빠지기 일쑤.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말 인터넷 종량제라도 됐으면 싶다.

아, 인터넷 때문에 인생을 탕진하는 불상사가 내게 일어날 줄이야! 네댓 달 전에는 급기야 카페를 탈퇴하리라 결심했는데, 아직 이러고 있다. 그래도, 몇 년이나 지난 게시글에 댓글을 올리고 있는 따위 짓을 이제는 안 하니 좀 나아진 셈이랄까.

이 카페에 가입하려면 나이가 만 18세 이상 48세 이하여야 한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나이 제한을 통과했는데, 대다수가 20대로 이뤄진 이 세계에서 아마 최고령이지 않을까. 나 보기가 힘들어 짜증이 난 친구의 험담대로, ‘한심하게’ 자식뻘 되는 애들이랑 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소위 ‘번개’도 했다.

한 회원이 빚 대신 받은 한 무더기 옷을 나눠 주겠다고 퀴즈 이벤트를 했는데, 원피스는 44, 청바지는 25라는 천하에 몹쓸 사이즈뿐이었다. 내겐 가당치 않은 치수 옷이지만 재미로 열심히 끼어들었다. 그리하여 이벤트 주최자께서 내 열심을 인정하사, 퀴즈는 못 맞혔지만 특별상으로 정상 성인 여성 사이즈의 청바지와 운동화를 보내주신 것이다. 그에 대한 감사 글을 올렸을 때 그이는 자신이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으로 밤샘 근무를 나가려던 참이었다. 마침 손님이 적은 날이라고, 그 편의점에서 야간 번개를 하자는 얘기가 오갔다. 그래서 급작스레 ‘막차 타고 가서 첫차 타고 돌아오기’ 번개를 하게 된 것이다.

카페에서 닉네임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수줍기도 했다.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인 사람도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고, 얼굴에 애티가 잘잘 흐르는 여대생도 있었다. 다들 어렸는데, 심지어 내 또래려니 짐작했던 편의점 주인도 나보다 거의 열 살 적은 부인이었다. 특별상을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알려 달라는 메시지 끝에 “참고하게 나이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적혀 있기에 내키지 않는 걸 꾹 참고 사실대로 답한 적이 있는데, “50? 꺾어진 50이오? 흠…퍼스나콘도 그렇고 왠지 남자라는 의혹이…”라고 돌연 불신에 가득 차고 샐쭉한 듯한 답신이 왔더랬다. 그래 나도 샐쭉해져서, “허허허허…다른 건 몰라도 남자만은 절대 아니랍니다!”라고 답했는데, 이제 만났으니 내 말이 다 정말이라는 걸 알았겠지.

편의점 앞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 회원이 가져온 부침개를 주인이 내온 커피랑 맥주랑 곁들여 먹으면서 우리는 곧 정신없이 떠들었다. 고양이 얘기만 나오면 평소 과묵한 사람도 수다쟁이가 되는 게 공통점인 사람들이었다.

10여 년 전, 소설가 이제하 선생님을 따라 선생님이 가입한 인터넷 동호회 정기모임에 갔을 때 우스워 죽는 줄 알았다. 청춘남녀와 선생님이 서로 ‘폭풍님’이니 ‘라메르님’이니 부르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그런데 내가 ‘그럭저럭님’ ‘바리이모님’ ‘리리아캣님’ ‘건어물녀님’ ‘곰반달님’ ‘히덩님’을 천연덕스럽게 부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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