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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동화 읽는 어른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호 12면

‘세계 명작동화’라고 하면 우선 마법사나 요정·유령이 나오는 환상동화의 주인공들-피노키오, 피터 팬, 오즈의 마법사와 도로시, 요술쟁이 유모 메리 포핀스, 동물의사 둘리틀 등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

한편으론 가슴 찡한 플랜더스의 개 파트라슈와 넬로, 키다리 아저씨, 빨간 머리 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메그·조·베스·에이미의 작은 아씨들 같은 가족 로망스 동화가 머리를 스쳐간다. 또 한편으로 박진감 넘치는 15소년 표류기,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 체류기, 외다리 해적 실버 선장의 보물섬, 정글 북의 모글리 같은 모험동화가 생각나 가슴이 설렌다.

최근 웅진씽크빅이 세계 고전문학 시리즈 ‘펭귄클래식’ 열 권을 한꺼번에 내면서 그 가운데 우리에게 ‘동화’로 익숙한 작품을 포함시켜 눈길을 끌었다. ‘행복한 왕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집,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세 권이다.

담당자 심하은 팀장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 독서 시장을 겨냥한 책”이라며 “그동안 애들이나 읽는 동화라는 선입견이 강했지만 실은 진지하고 복잡한 작가들의 원전을 완역하고 비평문도 함께 실어 그 철학과 사상을 제대로 감상·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소공녀’ ‘비밀의 화원’ ‘톰 소여의 모험’ 등도 마찬가지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고전문학 작품은 대부분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공공 영역(public domain)에 속하기 때문에 저작권 계약이나 저작료 지불 없이 어디서든 펴낼 수 있다. 게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이기 때문에 작품당 많게는 수십 종이 나와 있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출판사마다 기획편집의 방향이나 번역과 장정(디자인)의 수준은 천차만별인데, 그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고급스러운 장정이 돋보이는 시공사와 비룡소의 경우다. 시공주니어의 ‘네버랜드 클래식’은 2001년부터 현재까지 35권이 출간되었으며, ‘비룡소 클래식’은 2003년부터 총 21권이 나왔다.

두 시리즈 모두 각 권마다 일년에 수백에서 수천 권씩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시공사 김하연 대리는 “어려운 내용을 삭제하고 불편한 부분을 바꾸는 등 개작과 축약을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본 모습대로 펴 내면서도 현대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정성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높은 호응에도 불구하고 출간 주기를 촘촘히 하기가 어렵다.

비룡소 박지은 팀장은 “자녀에게 주려고 이 시리즈를 샀다가 부모가 먼저 읽고 열혈 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등장인물 이름이나 줄거리 정도만 기억하고 있던 동화 작품을 처음 온전한 책으로 만나면서 그 세계에 매혹되는 것이다. 풍부한 세부 묘사라든가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장들에 비로소 고전의 맛을 깨달으면서 동화책은 어린이용이 아니라 어른용이 된다.

물론 환상과 모험 등 쾌감을 자극하는 스토리 구조와 친숙한 캐릭터 등이 진지한 독서를 회피하는 요즘 성인 독자의 기호와 맞아떨어지고,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청소년 대신 성인을 타깃으로 돌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세계 명작동화의 일차적인 장점은 오래 되풀이해 읽어도 질리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이야기의 힘이다.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다양성에 방해가 될 정도로 쏠림 현상이 과도하거나 원전의 힘만 믿는 졸속 번역은 경계해야 한다. 국내 창작물 생산에 필요한 역량을 빼앗아서도 곤란하다.

최근 청소년 소설 창작이 붐을 이루어 다행인 가운데 한국 고대 설화의 주인공인 ‘마고 할미’를 모티브로 창작 동화 『마고의 숲』(장성유 지음, 손지훈 그림)이 나왔다. 이를 펴낸 현암사는 그간 ‘피노키오’ ‘돈 키호테’ 등 서양 고전 동화뿐 아니라 ‘서유기’ ‘장화홍련’ ‘평강공주와 온달’ 등 동양과 한국의 고전도 새롭게 만들어 내놓으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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