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크로싱, “북쪽 아이들 고통 함께 울어주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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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고통을 다룬 ‘크로싱’(큰 사진)의 김태균 감독은 영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사진=변선구 기자]

영화 ‘크로싱’의 개봉(26일)을 앞두고 만난 김태균(48) 감독은 마음이 여러 갈래인 듯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을 그린 가족 멜로”라고 강조하면서도 “우리나라 얘기로 보이더냐”고 거듭 물었다. ‘크로싱’이 단순하면서도 쉽지 않은 영화인 탓이다. 도입부의 줄거리만 간추리면 언뜻 우리네 과거의 극도로 궁핍했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아버지는 병든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소식이 끊긴 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11살 어린 아들은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나면 그만일 듯싶은데, 이야기의 배경은 다름 아닌 현재, 그리고 북한이다. 탈북자가 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어린 아들은 북한의 수용소와 중국을 거쳐 몽골에 이르는 가시밭길 여정을 겪는다. 남북 관계의 민감성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간 충무로에서 흥행과 상극으로 여겨온 소재다. 상업영화로 드물게 탈북자를 다뤘던 영화 ‘국경의 남쪽’은 2년 전 고배를 마셨다.

“이건 영화 안 된다고 했어요. 관객은 물론이고 투자 받기도 힘들 거라고.”

탈북자 얘기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에 김 감독의 첫 반응도 이랬다고 한다. 앞서 ‘화산고’ ‘늑대의 유혹’ 등 오락영화를 만들어온 그다. 관객의 성향을 모를 리 없었다. 무모하고도 대범한 제안은 충무로 바깥에서 나왔다. 재미교포 프로듀서 패트릭 최다. 그 역시 할리우드에서 ‘패트리어트’ ‘왓처’ 등 오락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다. 북한의 실상에 눈을 뜨고는 “내가 영화제작자인 게 부끄럽다”는 말과 함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김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일은 도움을 주는 정도로 시작됐다. 대본 쓸 작가를 소개해 주고, 6개월 동안 탈북자들을 만나며 사전준비를 했다. 감독이 직접 만난 탈북자만 100명쯤. “깊이 빠져든 거죠. 해야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자가 나섰고, 감독은 메가폰을 잡게 됐다.

“10년 전쯤 굶주린 북한 아이들을 다룬 다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나쁜 인간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도덕적으로 설 자리가 없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아프리카도 아니고, 서울에서 불과 몇 시간이면 닿을 곳인데.” 실은 그의 작고한 아버지도 이산가족이었다. 영화 속 배경인 함경남도 고원은 감독의 아버지가 나서 자란 곳이다.

제작진에는 조감독을 비롯, 북한 출신이 여럿 참여했다. 중국과 몽골 현지촬영의 안전 문제 등 여러 사정으로 제작과정은 비공개에 부쳤다. 그렇게 4년 만에 완성된 영화는 글머리에 그가 말한 대로 아버지와 아들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속 깊은 애정이 중심이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영화를 만들지 않았지요. 가능한 한 담담하게 가려고 했어요. 탈북자들의 애기 중에는 더 충격적인 것도 많은데, 최대한 검증 가능한 것만 다루려고 했어요. 들은 얘기 중에는 끔찍해서 못 볼 장면이 많아요.”

정치적·이념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차라리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주인공 용수(차인표)는 한국에 가려고 탈북한 게 아닌데 우여곡절 끝에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 “탈북자를 전체로 보면 그래요. 먹고살기 힘들어서죠. 그런데 중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하니까 붙잡히면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거죠. 더구나 극도로 폐쇄된 사회에서 자유가 뭔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가 쉽지 않죠. 중국에서 한동안 지내다 온 탈북자도 그 사이 TV에서 한국 모습을 많이 봤을 텐데 공항에서 시내 들어올 때 다리 밑만 쳐다본다고 해요. (북한에서 들은 대로) 거지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영화에는 여러 가지 미묘한 디테일에 고루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하다. 종교에 대한 묘사도 그런 예다. 영화 초반, 용수는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이웃을 통해 성경책을 접하는데, 그 정체가 뭔지는 알지 못한다. 나중에 서울에 정착한 용수는 신을 원망하는 피 맺힌 외침을 들려준다. “시나리오에 넣다 뺐다를 거듭하면서 고민했어요. 실제로 기독교에서 탈북자 관련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걸 일부러 피해가는 것도 사실적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용수의 대사는 신앙인으로서 제 자신이 하고픈 말이기도 했고요. 하나님은 저 땅(북한)의 고통을 보고 계신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거죠. ”

영화의 결말은 비극이다. 해피 엔딩의 가능성을 두고 감독은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 했다. “처음 시나리오 쓸 때부터 그랬어요. 고통 받으면서 죽어가는 아이가 너무도 많은데, (해피 엔딩은) 거짓이다 싶었어요. (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저도 모릅니다. 일단 함께 울어주고 싶었어요. 여기 와 있는 탈북자들도 쉽게 마음을 못 여는 외톨이예요. 북한의 굶주림은 정치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

흥행 전망을 묻자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난) 태안에 가서 돌도 닦는 사람들 아닌가요. 묘한 믿음이 있어요.”

글=이후남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탈북자 다룬 ‘크로싱’은 …

한때 제법 이름난 축구선수였던 용수(차인표)는 현재 함경남도의 탄광에서 광부로 일한다. 무채색에 가까운 마을의 모습, 장터 상인들 틈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행색이 궁핍한 이 사회의 형편을 짐작하게 한다. 황량한 배경이나마 용수가 어린 아들 준이(신명철)와 공차기를 하는 장면이 정겹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안 그래도 혈색이 나쁘던 용수의 아내(서영화)가 갑자기 쓰러져 결핵 진단을 받는다. 게다가 임신 중이어서 아무 약이나 쓸 수도 없다. 용수는 당국의 묵인하에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이웃 상철(정인기)에게 약을 부탁했다가 상철네 일가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직접 강을 건너기로 결심한다.

영화 ‘크로싱’에서 용수를 움직이는 동인은 단 하나, 가족을 먹이고 살려야 한다는 의지다. 용수는 중국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현지 공안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다 모두 잃어버린다.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일단 몸은 숨겼지만 약도 돈도 없이 집에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용수는 인터뷰를 하면 돈을 준다는 제안에 낯선 사내를 따라 나서고, 그 결과는 뜻하지 않았던 한국행으로 이어진다. 서울에 정착한 용수는 브로커를 통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수소문한다. 병석의 엄마가 숨진 뒤 홀로 남은 아들 준이는 가재도구를 판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고 중국으로 길을 떠난다. 넉넉히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 소년이 겪는 일은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준이보다 먼저 떠돌이가 됐음 직한 또래 아이들, 이른바 꽃제비들의 모습은 더도 덜도 없이 이악스러운 생존본능대로다.

그 틈에서 준이는 학교 친구이자 상철네 외동딸 미선(주다영)을 발견한다. 부모를 잃은 미선 역시 외톨이 거지꼴이다. 서로 의지가 된 두 아이는 용수가 있는 중국에 가기 위해 강을 건너려다 붙잡혀 수용소로 향한다.

‘크로싱’은 어린 나이에 누려야 할 법한 최소한의 보호막도 없이 생존의 벌판에 내던져진 소년의 이야기다. 영화 막판, 준이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시린 드넓은 몽골의 사막을 나홀로 헤맨다. 사방천지 의지할 곳 없는 소년의 처지를 상징하는 동시에 실제 탈북자의 사연에서 따온 대목이다. 이 소년이 사는 사회는 21세기 국가들이 갖춰야 할 사회안전망은커녕 전통사회의 공동체적 도움마저 기대할 수 없다. 이 사회의 압제적인 특징은 소년이 배워온 바로는 해석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을 얹어준다.

주목! 이 장면

아버지 용수가 브로커를 통해 준이의 소재를 찾아내고, 두 부자는 헤어진 뒤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통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아들의 첫마디는 “아버지, 내가 잘못했습니다.” 원망도, 설움도 아닌 자책이다. 어린 아이로서 감당할 수 없는 비극적 체험을 준이는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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