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즐거운 천자문] 겸손한 ‘소통의 달인’ 최고 인기 MC 유재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스타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은 크게 두 부류다. 신비감으로 겹겹이 무장한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친근감으로 아예 무장해제하는 유형도 있다. 가수나 배우들 중에 전자가 꽤 있는 반면 개그맨이나 MC들은 후자 쪽이 대부분이다. 연예인 중에 유난히 1972년생이 많은데 서태지·배용준·장동건 등이 이른바 신비주의 계열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친근감의 대명사인 유재석이 있다.

TV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게 제1회 KBS대학개그제였다. 스타탄생 여부와 상관없이 77년 이래 30년 이상 꾸준히 개최되는 MBC대학가요제와 달리 KBS대학개그제는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방송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다만 그 대회에서 상을 받은 김용만·김국진· 남희석·박수홍 등의 프로필을 검색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게 바로 ‘문제’의 제1회 KBS대학개그제다.

1991년 당시 서울예전 1학년이던 유재석은 동급생 최승경과 함께 개그대회에 참가해 장려상을 받았다. 지금이야 자료화면을 보고 깔깔대고 웃으며 그 당시를 회고하지만 그에게도 오랜 무명시절이 있었다. 슬랩스틱은 물론 다양한 코믹연기를 선보였지만 무정한 대중은 좀체 마음을 열지 않았다. 파트너였던 최승경은 후에 연기자로 직업을 바꾸었다.

유재석의 성공은 개인기보다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걸 웅변해준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거의 완벽하게 성대모사를 하고 표정연기를 따라 했던 친구들이 쓸쓸히 퇴장한 후에도 기본에 충실했던 유재석은 유유히 살아남아서 이제는 국민MC라는 말마저 듣는 단계에 이르렀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대통령에게 부족한 다섯 가지’라는 기사를 읽고 문득 떠오른 게 유재석의 얼굴이다. 그 다섯 가지야말로 바로 유재석의 성공요인이었던 것이다. 순서대로 적으면 소통, 포용, 겸손, 성찰, 신(新)사고다.

어느 프로에서 보아도 유재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단연 돋보인다. 절대로 분위기를 장악하려 하지 않는 게 그의 소통기술이자 생존전략이다. 누가 무슨 공격을 해도 웃으며 감싸 안는 배려 역시 그의 생명 연장술이다. 최고 인기인이 됐는데도 여전히 쑥스러워하고 겸연쩍어한다. 그게 만약 꾸민 거라면 그는 정말 연기의 달인이다. 인터뷰할 때마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늘 돌아보고 감사함을 표한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겁내지 않고 안티 세력까지도 존중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결혼발표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자신의 상표(브랜드)처럼 돼버린 메뚜기춤을 추는 ‘관용’을 베풀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의 장난스러운 요구였지만 전혀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시대의 상표는 상상력과 표현력이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으로 봉사한다. 말하자면 그는 속담을 바꾼 사나이다. 이제 메뚜기는 한철이 아니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