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 골드버그 ‘원맨쇼 M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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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62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팀들이 극 중 하이라이트 부분을 공연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한 편의 또 다른 뮤지컬이었다. 13편의 축하 공연은 똑 맞아 떨어지는 톱니바퀴처럼 척척 굴러갔고, 시상자나 수상자 역시 좀처럼 빈 구석을 찾아 보기 힘들 만큼 세련되게 무대를 장악해 갔다. 속도감이 있었지만 절제가 보였고, 품위가 있는 가운데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툭 뱉어진 말 실수조차 관객의 웃음을 끌기 위한 계획된 각본처럼 보였다. 전 세계 뮤지컬·연극인들의 로망인 ‘토니상’의 생생한 현장을 국내언론 가운데 중앙일보가 단독 취재했다.

#관객도 스타처럼

본 시상식은 15일 오후 8시(현지시간). 그러나 무대가 오르는 뉴욕 50번가 라디오 시티 뮤직홀 주변은 4시간 전부터 수천 명의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레드 카펫은 6시부터 정문에서 진행됐다. 브룩 실즈·알렉 볼드윈·글렌 클로즈·해리 코닉 주니어·라이자 미넬리 등 뮤지컬 스타들이 한 명씩 리무진에서 내릴 때마다 함성과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이들은 역대 토니상 수상자들로 이날 시상자로 함께했다.

같은 시각, 뒷문으론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1㎞가 넘는 극장 둘레를 한바퀴 뺑 돌만큼 엄청난 인원이었다. 게다가 모두들 제대로 빼입었다. 남자 관객은 연미복에 턱시도, 여성들은 가슴이 푹 파인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과연 누가 배우고, 누가 관객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해야 할까.

라디오 시티 뮤직홀은 무려 6000석이나 된다. 그러나 4층 꼭대기층까지 단 하나의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빽빽했다. 티켓 값도 엄청난 편. 1층 로열석은 무려 400달러, 가장 싼 좌석도 150달러나 된다. 그러나 ‘토니상’ 주최측인 미국 극장 기구(American Theater Wing)의 관계자는 “티켓 예매 후 일주일이면 사실상 매진된다”고 전했다. 관객들은 시상식 전 무대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한 젊은 여성은 “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없다. 뜻 깊은 시상식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 꿈만 같다”고 말했다.

방송은 오후 8시부터 CBS를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되지만 시상식은 7시부터 거행됐다. 대중의 관심이 조금 떨어지는 무대·의상·조명·음향 등 총 29개 부문 중 절반에 해당하는 14개 부문을 미리 시상하는 격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방송을 하지 않은 탓인지 수상자들은 더욱 솔직하게 소감을 쏟아내고 극장은 따스함과 정겨움이 감돌았다.

#브로드웨이를 팔아라

오프닝 공연은 ‘라이언 킹’의 몫이었다. 기린·사자는 물론, 객석에서 커다란 코끼리 모형이 등장하자 무대는 어느새 후끈 달아올랐다. 축하 공연 하나에 시상 하나를 묶는 게 기본 포맷이었다. 축하 공연은 몽땅 뮤지컬이었다. 최우수 작품상(Best Musical)과 최우수 재공연상(Best Revival Musical) 후보에 오른 8편만이 무대에 서는 게 오래된 관행이었지만, 올핸 특별히 후보에 못 오른 다른 뮤지컬 몇 편도 함께 소개됐다. 축하 공연뿐만 아니라 영상물에서도 ‘맘마미아’ ‘헤어스프레이’ ‘금발이 너무해’ 등 브로드웨이에서 현재 공연 중인 모든 뮤지컬을 총망라해 보여줬다. 지난해 가을 스태프와 창작자들의 파업 이후 다소 침체에 빠진 브로드웨이를 의식한 탓인지 2008년 ‘토니상’은 작정하고 브로드웨이 홍보에 나섰다.

홍보 전도사는 단연 MC를 맡은 우피 골드버그였다. 그는 시상식 진행보단 다양한 쇼의 카메오로 변신하기 바빴다. 몸을 공중에 매달고선 ‘메리 포핀스’처럼 날아다니는가 싶더니 어느새 롤러 브레이드를 타고 ‘재너두’의 한 대목을 연기했다. ‘오페라의 유령’ ‘코러스 라인’ ‘사춘기’ 등에서도 깜짝 등장했다. “최근 양심 있는 흑인 판사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와 같은 뼈 있는 농담도 그의 몫이었다. 특이한 수상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작곡·작사상(Best Original Score)을 받은 린 마뉴엘 미란다는 준비했다는 듯 랩으로 소감을 대체했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패티 루폰은 “‘에비타’이후 28년 만이다. 그때 얘기 못한 사람까지 다 포함해야 하니 길어도 참아달라”고 말했다. 작품상을 받는 경우엔 제작자 이외에 스태프·배우가 모두 무대에 오르고, 수상 소감이 조금 길다 싶으면 배경 음악의 볼륨을 높여 자연스런 마무리를 유도하는 장면 등은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축하 공연의 대미는 ‘렌트’였다. 현재 공연하는 멤버와 96년 초연 출연자들이 이례적으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꾀하고 있는 토니상의 현주소를 웅변하는 것일까. 대표곡 ‘시즌스 오브 러브(Seasons of Love)’에 관객도 하나가 됐다.

뉴욕=최민우 기자

바로잡습니다

토니상 티켓 값은 150∼400달러가 아니라 200∼850달러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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