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 쇠고기 불신 비난할 순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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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 포스트(WP)·뉴욕 타임스(NYT)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이 한국 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정서를 이해한다는 사설과 칼럼을 잇따라 게재했다. 특히 WP는 사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살리기 위해 미 행정부가 쇠고기 추가협상과 관련해 한국을 적극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WP는 14일 (현지시간) ‘서울의 쇠고기 불평’이라는 사설에서 “한국인들의 반응이 비이성적이라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중국산 장난감의 납 페인트부터 칠레산 포도 공포까지 각종 수입품으로 인해 자주 발생하는 미국인들의 심리적 공황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 당국은 1989년 테러리스트가 몰래 뿌린 청산가리에 오염됐을지 모른다는 과장된 의혹 때문에 칠레산 포도 200만 송이를 압류 처분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WP는 이런 예를 들면서 “북한과는 달리 더 이상 가난과 질병에 찌들지 않은 남한으로선 사소한 건강상의 위험에 대해서도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며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가끔씩 공황 상태에 빠질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회는 한국이 쇠고기 수입 금지를 철폐하지 않으면 FTA를 비준하려 하지 않겠지만, 부시 행정부는 양국 간 무역협정을 살리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쇠고기 추가협상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수입재개 결정을 재처방할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13일 NYT에 게재한 칼럼에서 “쇠고기 문제는 한국의 국가적 자존심과 얽혀버렸다”며 “한국의 자존심이 미국의 서툰 외교정책에 의해 모욕당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 쇠고기에 대한 불신은 합리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한국인들을 비난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크루그먼은 특히 업계 로비에 의해 안전성 문제가 도외시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 내 광우병이 발견된 후인 2004년 한 캔자스 쇠고기업체가 대일 수출 재개를 위해 도축소 전수조사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며 “소비자들이 똑같은 과정을 실시하라고 요구할 것을 두려워한 다른 업체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쇠고기업계를 대우하려는 농업부의 배려가 역작용을 일으켜 외국의 수요자들이 더 이상 미국의 안전조치를 믿지 않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효율적인 규제에 실패하면 소비자뿐 아니라 사업 자체에도 해롭다”고 강조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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