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불신의 '명박산성' 허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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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구경했던 청와대는 금방 귀신들이 나올 듯 괴괴하고 적막했다. 사람의 마음은 몸을 담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마련인지라, 솔직히 청와대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청와대의 풍수지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지면 성정이 맑은 사람과는 멀어지고 돈과 권력의 단맛을 찾는 이들에게 둘러싸이기 십상이다.

어렵사리 얻은 전리품을 빼앗길까 두려운 데다 달콤한 아부의 말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청렴하고 부지런한 데다 이념까지 고귀했던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말년에 불행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과 차단되었던 청와대가 촛불집회 기간 동안 ‘명박산성’이라 명명된 컨테이너에 둘러싸였다. 적으로부터 성을 사수하겠다는 장수의 결연한 의지와 뿌리 깊은 피해의식을 읽을 수 있는 대단한 방어벽이었다.

시위의 핵심이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검역 주권을 내준 졸속 협상, 굴욕적 외교, 대통령의 폐쇄적 인사와 전횡적 통치, 잡히지 않는 물가와 경제침체에 대한 총체적 분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통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컨테이너가 답답하다 못해 처연해 보였다. 혹 집권층이 공황증과 자폐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황당한 걱정도 들었다.

경제만 살려 놓을 수 있다면 돼지라도 괜찮다던 국민이 대통령의 안티팬으로 변하기까지 불과 10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문제다. 맹목적 애정은 맹목적 증오로 변하기 쉽다지만, 자칭 ‘얼리버드’인 불도저 대통령의 급한 성격에 국민이 전염된 탓일까. 순식간에 마음이 바뀌어 “경제를 살려 놓겠다고 허풍 떤 사이비에게 속아 넘어갔다”며 땅을 치고 있는 형상이다.

명백한 사실은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간극이 ‘명박산성’만큼이나 공고해졌다는 점이다. 광우병에 흥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금방 사그라질 불만의 표시인 줄만 알았다. 민심을 읽을 줄도 모르고 서민의 박탈감도 공감하지 못하는 정부의 잘못된 대응들이 사태를 점점 더 꼬이게 해서 이제는 마치 이혼을 앞둔 부부같이 불신과 증오가 극에 달해 있다. 노사, 여야,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쳐 고유가와 세계적 불황을 헤쳐 나가도 모자랄 판인데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버틸지….

정신과 의사로서 생각해 본 해결책은 화해다. 못난 정부지만 일단은 용서해 주었으면 한다. 대통령으로 뽑아 주어 치명적인 그의 도덕적 결점까지 덮어 주는 결단을 기왕에 했다면 불과 몇 달 만에 결론을 내리지는 말았으면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현안들을 처리하게 해야 우리나라가 세계적 불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이후에도 형형한 정신을 잃지 말고, 정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행동하는 양심을 다시 보여 주면 된다.

정신과 전문의 융 분석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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