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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TV 뒤집기] 토론도 쇼가 되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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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새 시대의 토론문화를 개척한다는 ‘백지연의 끝장토론’(XTM, 금요일 밤 12시). 형식·주제·수위 제한이 없는 3무(三無)를 내세운 토론쇼가 이들이 내건 간판이다. 노회찬·진중권 같은 시대의 입담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패널 선정이나 사회자 백지연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출발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첫 회는, 거칠게 말하자면 난장판이었다. 말이 ‘끝장토론’이지 ‘이명박 대통령의 CEO식 국가경영의 문제점’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놓고 쇠고기 협상, 교육 평준화 등 하나씩만 해도 넘치는 주제를 한 시간에 소화하느라 발만 담그는 수준으로 토론은 진행됐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청객 토론은 ‘누구 목소리가 크냐’로 승부가 가름되는 시장판 싸움 모습 그대로였다.

논리도 없고 예의도 없는 방청객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툭툭 끊거나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펴거나, 상황에 대한 비유만으로 대결을 벌이거나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어지러운 카메라 워크와 편집 등 욕심 많은 화면은 어수선했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 이 쇼는 비유하자면 ‘100분 토론’(MBC)의 ‘제리 스프링어 쇼’(미국 NBC)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토론 쇼,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건 기존의 토론 프로들이 지키고 있는 공정함과 객관성, 그리고 중립성을 무너뜨린 데 대한 쾌감 때문인 듯했다.

사실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늘 같은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는 철칙을 가진 지상파 토론 프로들의 기계적인 중립성은 보기에 답답한 구석이 있다. 대중의 의견은 딱 갈라서 반반으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자 백지연도 발언 기회나 시간 등에서 애써 한가운데 서려 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의 발언에 따라 사안의 무게중심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전문가들의 토론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기존 프로의 수동적인 성격을 벗어나 참가자들의 난상토론이 벌어진 점도 새로웠다. ‘100분 토론’을 보면 방청객 논객이나 전화 거는 시민들이 전문가 패널들보다 속 시원하게 말을 더 잘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끝장토론’에서는 비록 비논리와 막말이 오갔을지라도 낮은 눈높이에서 참여를 이끌어내는 점이 좋았다.

인터넷의 댓글이나 채팅을 토론 프로로 옮겨 놓은 느낌이랄까. 방청객이 “잘못된 법을 만든 국회의원을 때려주고 싶다”라고 하자 노회찬 전 의원이 “그러니까 국회의원 제대로 뽑으세요”라며 맞서는 부분은 토론 프로의 파격을 시도하고자 한 이 쇼의 의도적인 가벼움에 걸맞은 장면이었다.

‘토론이 오락 프로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제시한 이 쇼를 보면서 그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한 표를 던지고 싶었다. 토론이 정착돼 있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오락으로든 쇼의 형식으로든 토론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이 토론쇼에 기대를 걸면서 두어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동어반복에 비유만 되풀이하며 비논리로 일관하는 방청객 논객에게는 전문가가 경기의 심판처럼 페널티를 주면서 몇 분간 발언을 금하는 등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게임의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쇼의 성격도 살리고 올바른 토론 방식을 교육하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살리는 방법이다.

또 방청객의 논쟁과 전문가의 논쟁을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방청객이 내세운 논리에 전문가가 지식과 의견을 보태면서 논지를 강화해 주는 식으로 토론을 진행해 나간다면 좀 더 심도 있는 참여형 토론 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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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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