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쿄대 박사 된 ‘일본의 헬렌 켈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일본의 헬렌 켈러’로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시(福島智·45·사진)가 박사가 됐다.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고도 도쿄대 교수가 된 인물이다.

시·청각 중복 장애인으로는 일본의 첫 박사가 되는 그는 자신의 일기와 작문·녹음테이프 등 자료를 분석, 장애의 절망과 손가락점자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된 경험을 분석한 논문으로 11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고베 출신인 그는 생후 5개월만에 안구염을 앓아 세 살때 오른쪽 눈, 아홉 살때 왼쪽눈의 시력을 잃었다. 1년간 집에서 요양한 뒤 맹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15살때 특발성 난청으로 오른쪽 귀가, 18세때는 왼쪽 청력까지 잃었다.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절망감이었다. 그는 시청각장애인의 고충을 ‘꺼진 텔레비전’에 비유한다. 청각장애인은 텔레비전을 화면만 보는 것과 같고, 시각장애인은 소리만 듣는 것과 같다면 시청각장애인은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끈 것과 같은 상태”라는 비유다.

완전한 어둠과 적막감 속에서 그를 다시 일으킨 사람은 어머니 레이코(令子·74)였다. 그는 “어머니의 끝없는 격려 덕에 나는 “더는 나빠질 수 없다. 이제 바닥에서부터 내 인생을 설계하자”는 자신감을 서서히 갖게 됐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점자 타자를 배워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세상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무거운 타자기를 들고 다닐 수 없어 외출시에는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날 아들과 다투다 답답함을 느낀 어머니가 무심코 그의 손가락을 점자 타자기로 생각하고 ‘사토시’라는 글자를 두드린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다. 손가락 점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손가락 점자는 두 사람이 손가락을 겹치고 점자타자기를 두드리는 움직임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현재 일본 내 800여 명의 시·청각 중복장애인 가운데 10여 명은 후쿠시마 교수의 손가락 점자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1983년 시·청각 중복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도립대 인문학부에 합격했다. 그러나 교재나 논문 등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읽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점자로 번역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공부를 계속해서 뭘하나”라고 고민하던 중 자신과 똑같은 시·청각 장애를 겪고 있는 7살 소년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저 아이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라며 장애인 교육을 전공,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93년 수화전문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부인과는 95년 결혼에 골인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머 감각 덕분이었다. 그는 “9살때 실명하고, 18세때 청력을 잃었다. 9년 단위로 어려운 일이 닥쳤는데 27세때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배가 나오더라”는 농담으로 부인과 첫 인사를 나눴다.

2001년엔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조교수에 부임, 장애인들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새 삶을 살게된 과정도 담았다. 논문에서 그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커뮤니케이션은 공기나 물, 음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작업에는 모두 6년이 걸렸다. 모든 자료를 전자 데이터화한 뒤 점자 소프트웨어로 변환해 읽었다. 논문은 컴퓨터로 입력해 점자로 변환했다. 논문을 쓰는 동안 눈과 귀 역할을 해온 손가락에 염증이 생겼고,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 진단까지 받아 한동안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후쿠시마는 현재 일본교육학회·일본특수교육학회 회원, 전국 농맹인협회 이사, 세계농맹인연맹 아시아지역 대표 등을 겸임하고 있다. 96년 어머니와 함께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문화상 수상, 2002년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10년’ 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3년엔 뉴욕 양키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야구선수 마쓰이 히데키(松井秀樹)등과 함께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에 올랐다.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겐 또다른 목표가 생겼다. 미국의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직업훈련·재활센터인 ‘헬렌 켈러 시청각장애센터’ 같은 시설을 일본에 세우는 것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