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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군에 간 아들에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11월9일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새마을호로 널 정신없이 논산훈련소로 떠나 보내고 엄마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네가 떠난 빈방을 정리하면서 벗어놓은 옷가지며 책들….하늘에도 거리에도 산에도 들에도 온통 네모습 뿐이었지.가슴죄며 보낸지 15일째 군사우편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너의 편지를 받아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어가면서 엄마는 감격했단다.철모 쓰고 워커 신고 쇠몽둥이 같은 M16소총 들고 목이 터져라구호 외치며 새벽 찬공기를 가르며 달릴 때 더 늠름하고 당당한사나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솟아 오른다는 너의 편지를 읽고 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단다.이제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널 그렇게 장하게 만들어 준 군생활이 그저 고맙게 느껴질 뿐이다.
네가 보고 싶을 땐 요즘 『남자만들기』란 드라마를 보면서 위로받고 지낸다.새로 만난 전우들,힘들고 외로울때 도와주고 먼저베풀어라.베풀면 되돌아온다는 세상 이치를 깨닫고 긴 앞날을 위해 몸과 마음을 굳세게 다져 탄탄한 남자의 기반 을 만들기 바란다.며칠전에는 아버지가 퇴근해 문열고 들어오실때 내가 너대신『5중대 48번 김형우 충성』이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깜짝 놀라시며 『아예 논산가서 살아라,살아』하시더구나.그런데 오늘 아침출근하실때 엄마가 『충성』이라고 거수경례했더니 아버지께서도 『충성』이라면서 답해주시더라.
언제쯤 장한 네모습 볼 수 있을까.
이영희〈부산시금정구남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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