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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家의 증권업 사랑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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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30면

재벌이 한창 사업을 확장해 가던 시절 금융업, 특히 증권업은 막내의 ‘전유물’이 되곤 했다. 한진에선 고 조중훈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부회장이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 경영을 맡았고, 쌍용에선 고 김성곤 회장의 막내아들인 김석동씨가 쌍용투자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의 키를 쥐었었다. 현대가(家)에선 고 정주영 회장의 7남인 정몽윤씨가 현대해상을, 8남인 정몽일씨가 현대기업금융을 맡았다. 당시 제조업이 주력인 재벌들에게 금융업은 지원군 역할을 했다. 안정적으로 경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막내가 금융부문을 맡는 게 제격일 수 있었다.

최근 대기업들이 앞다퉈 증권사 인수 경쟁에 나서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신흥증권을 인수했고, 현대중공업이 CJ투자증권의 새 주인이 됐다. 롯데·한화·포스코·GS·LS·STX 등 자금력이 있다고 알려진 대기업들도 증권사 인수 후보로 꼽히곤 한다.

이들 대기업의 증권사 인수는 명분으로 내건 것처럼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처럼 금융 계열사를 통해 그룹 부가가치를 높이거나(현대·기아차), 현금 자산을 더욱 원활히 운용하는 데(현대중공업)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금융업으로 넘어가는 산업 사이클에서 신성장 동력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단 표준화, 비용 축소, 대량 생산에 익숙한 제조업의 성공 방식을 금융업에 그대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오히려 대기업끼리 자존심 경쟁을 벌인다거나 기업공개(IPO)를 앞둔 협력회사 등에 ‘입김’을 불어넣는 제조업식 ‘구태’를 반복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신흥증권을 인수한 현대·기아차그룹은 현대그룹과의 갈등 때문에 한때 이름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 HYUNDAI-IB증권·현대차IB증권 등을 검토하다 결국 HMC투자증권으로 이름을 지었다. 현대중공업이 CJ투자증권을 인수했을 때는 범현대가가 ‘자존심 싸움을 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대기업의 증권사 인수가 제조업 부문과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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