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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회 “아이누족 원주민 인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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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의 원주민 ‘아이누’족(사진)이 민족 정체성을 되찾게 됐다. 일본 국회는 6일 정부가 아이누족을 원주민으로 인정하고, 종합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은 “근대화 과정에서 다수의 아이누족이 차별을 받고 빈궁에 처했던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아이누족을 독자의 언어·종교·문화를 보유한 원주민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국회가 이같이 나선 데는 유엔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유엔이 1993년을 ‘국제 원주민의 해’로 지정한 뒤 세계 70여 개국에서 3억여 명에 이르는 원주민의 전통과 인권 보호 강화를 추진해 왔다. 지난해 9월에는 유엔에서 ‘원주민족의 권리선언’이 채택된 후 호주 등이 잇따라 원주민 탄압을 사과했다. 다음달 7~9일 홋카이도에서 G8(G7+러시아)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일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 정부가 아이누족을 원주민으로 인정하면 상당한 정치적·경제적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토지 보상은 물론 인권 탄압에 대한 사과도 해야 한다. 아이누협회의 가토 다다시(加藤忠) 이사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도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탄압받은 역사=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홋카이도(北海道)를 중심으로 일본 동북부와 사할린·쿠릴열도에서 살아온 일본 원주민이다.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이들의 불행은 시작됐다. 일 정부가 본토인들을 대거 홋카이도로 이주시키면서 아이누족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 정부는 동화정책 차원에서 창씨개명을 실시해 이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민족혼 말살을 위해 일본어 사용을 의무화했다. 저항하는 남자들은 상당수가 희생되고 여자들은 강제로 일본인의 현지처가 되면서 혼혈아가 많아졌다. 그러나 쌍꺼풀이 지고 우묵한 눈과 약간 검은 피부를 가진 인종적 특성 때문에 이들에 대한 차별이 끊이지 않았다. 교육·취업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자 아이누족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홋카이도의 인구는 메이지유신 이후 200배(560만 명) 이상 늘었지만 아이누족은 정체 상태를 보이며 2만3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빈곤한 생활=고유 문자가 없지만 아이누족의 민족혼과 전통문화를 살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차별 때문에 일본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뤄 살고 있다. 민속춤·민속행사 등으로 근근이 살아갈 정도의 수입만 올리고 있어 이들의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고교 졸업 비율도 50% 수준이다. 초·중학교에서도 아이누족의 존재를 사실상 소개하지 않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원주민족 권리선언=유엔이 1980년대부터 20년 이상 논의한 끝에 지난해 9월 총회에서 채택했다. 원주민에게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장한다. 아울러 동의 없이 몰수된 토지와 자원을 반환받을 수 있게 했으며 고유 문화의 유지·부흥, 민족자결권을 보장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민족자결권이 국가로부터 독립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찬성했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4개국은 국내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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