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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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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여행을 떠나올 때 유부남 골퍼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무슨 재미로 마누라와 단 둘이 6개월 동안이나 골프를 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여러가지 의미가 꼬인 말이겠지만 요지는 골프를 어떻게 둘 만, 그것도 여자(특히나 마누라)와 무슨 재미로 매일 칠 수 있겠냐는 지극히 남편 입장에서의 걱정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골프는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이라 응수했었다. 하지만 옥스퍼드에 이르기 전까지 남편과 단 둘 만의 라운드가 한 달 여 동안 이어진 상태였다. 결론은, 남편 뿐만 아니라 마누라 입장에서도 둘 만의 라운드는 그다지 긴장감이나 재미가 없다는 사실. 같은 티에 모여 왁자지껄 티 샷을 하고 서로의 거리를 가늠해가며 경쟁심을 유발시키던 동반자들이 몹시도 그리웠다.

영국 골프장을 누비면서 가장 낯선 모습 중의 하나가 혼자 골프를 치러오는 사람들이었다. 4명 꽉꽉 채워서 팀을 만들고 캐디 언니까지 합세해 시끌벅적한 골프를 즐기던 우리네 눈에는 따분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홀로 앉아 고스톱을 치는 모양새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예전에 선배 한 분이 자신의 골프 인생에서 가장 억울했던 순간이 외국에서 혼자 골프를 치다가 홀인원을 했을 때라고 했는데 혼자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선배가 떠올라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동반자도 그립고, 한국 음식도 그리워지던 무렵 우린 옥스퍼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낮아지고 있는 먹구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옥스퍼드에는 완전 소중한 우리의 동반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옥스퍼드 일대의 한인 골프계를 접수하셨다는 소문이 흉흉한 S님과의 조우가 예정된 날이다.

옥스퍼드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골프장이라는 S님의 추천으로 도착한 Hinksey Heights GC. 본래는 목장으로 사용되던 부지였으나 대처 수상이 대차게 영국 경제 부흥을 추진하던 그 시절, 농가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자 수많은 목장 지기가 목장에 벙커를 파고 그린을 다져 골프장 사장으로 전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inksey Heights GC도 그 시절에 탄생한 골프장이었다. 농가의 창고가 클럽하우스가 되고, 축사가 프로샵과 관리동이 된 모양새였다.

왼쪽 발목 부상으로 절뚝거리며 나오신 S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몸이 안 좋아 2개월 만에 처음 채를 꺼냈다며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18홀을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시며….

그러나 바로 그 분…. 1번 홀부터 우릴 거의 아작내기 시작하셨다. 체중 이동? 넘치고도 모자라 피니쉬 때엔 몸이 거의 앞으로 튕겨 나가고 2개월 만에 처음 꺼낸 클럽은 불꽃 샷을 연발했다. 어떻게 저런 폼으로 저 거리와 방향이 구현될까 도저히 믿지못할 진기명기가 펼쳐졌다. 시꺼멓게 비를 머금었던 구름이 바람과 함께 비를 내리꽂기 시작했지만 전혀 흔들림 없는… 한 쪽 다리만으로도 체중 이동을 조정하는… 그렇다 그는 진정한 강호의 고수였던 것이다.

코스는 첫 홀부터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으로 시작되어 비바람을 안은 채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목장 지대를 그대로 살리다보니 경사가 심했다. 심지어 V자 계곡의 페어웨이도 자주 출몰했다. 두 다리로도 벅찰만치 고도가 높았고 정상 홀에서는 옥스퍼드 전망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러나 S님은 절뚝 거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마지막 홀까지 깃발을 날리셨다. 물론 우리들의 조촐한 내기는 S님의 완승으로 끝났다.

실로 오랜만에 지인과 함께 한 라운드는 다소 지쳐가던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을 안겨주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긴장감과 경쟁심이 재부팅 되었고, 둘 만의 과묵한 라운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굿 샷’, ‘나이스 인’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골프가 자기와의 싸움이라 했던 말, 취소다. 친구와의 승부가 비교도 안되게 더 재미있는 걸.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