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일기장을 리모델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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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일기장에 대해 적어 보려 해요.

◇ 일기장을 바꾸는 시기와 주의할 점

일기장 지도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일기장’을 선택하는 것이랍니다. 한번쯤은 일기장으로 적당한 공책이 무엇인지 한번쯤 고민하여 보셨을 거예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세요.

일단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바른 글씨 쓰기 연습도 고려하여 일명 ‘바둑판’이라 불리는 10칸 공책을 준비해주시고 2학년 때는 1-2학년용 일기장이나 14칸 줄 공책으로 준비해보세요. 시중에 판매되는 ‘일기장공책’ 대신 ‘일반 공책’을 사는 이유는 일기장 공책의 경우 날씨와 날짜를 간략하게 쓰도록 되어 있고 고정된 하루 일기의 틀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열린 생각에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3학년이 되면 16줄 공책으로 바꾸고 일기 내용이 알차지고 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 21줄 공책으로 서서히 바꿔 준다면 자연스레 고학년이 되어 23줄-25줄 공책을 일기장으로 사용하게 될 거에요. 이 때 겉표지가 두껍고 딱딱한 다이어리처럼 생긴 예쁜 일기장은 두께도 두껍고 양면의 마주 닿은 면까지 완전히 펴지지 않는데다가 줄의 간격까지 좁아 초등학생 아이들이 글을 쓰는데 적당하지 않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 일기장의 겉표지를 디자인하자

'일기 써라', '일기는 꼭 써야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아이에게 '나의 일기장은 참 특별하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세요. 그러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이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겉표지를 디자인하는 거예요. 일단 일반 공책 겉표지에 직사각형종이를 적당히 오려붙여 그 종이에 나의 일기장만의 특별한 표지를 직접 꾸미게 하세요. 처음엔 어색할 수도 있지만 어느새 새로운 일기장을 구입할 때마다 ‘자신만의 겉표지’ 멋지게 만들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시게 될 거예요. 일기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아이에게 억지로 다짐시키기 보다는 아이에게 겉표지를 디자인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 아이가 ‘일기쓰기의 즐거움’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답니다.

◇ 일기장 날짜는 한자로도 써보자

초등 교육 과정 상 빠르면 1학년, 늦으면 3학년 때 부터 숫자 1~10, 년, 월, 일 등 간단한 한자표현을 배우게 되거든요. 이때 한자를 친숙하게 하는데 일기장을 활용해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날짜를 한자로 적게 되면 한자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고 오늘 배운 한자를 일기의 문장에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어 아이에게 일기장은 배운 한자를 활용하는 공간이 되어 주는 거죠. 또 가끔은 일기를 검사하시며 '이 말이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지 않니?'라고 물어본 뒤 한쪽에 직접 적어주고 아이에게 고쳐서 적도록 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한자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게 되어 아이의 한자 실력이 부쩍 향상될 거예요. 이 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기쓰기의 원래 목적을 간과하지 않도록 한자 학습과 일기 지도를 조절해야 아이가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거 꼭 명심하시구요.

일이의 일기


◇ 날씨를 문장으로 써보자

아이의 일기장으로 ‘줄 공책’을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날씨쓰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되실 때 아이의 일기공책을 꺼내어 보세요.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기공책’의 경우 맨 윗줄 오른쪽에 날씨를 적게 되어 있는데 날씨를 적는 공간이 매우 좁아요. 날씨를 쓰는 공간이 좁다보니 아이들은 날씨를 여러 감각으로 느끼고 생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맑음'이나 '흐림'과 같이 날씨를 나타내는 단어 하나만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틀에 맞추어 간략히 서술하는 소극적 표현은 아이의 창의성이나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그러므로 일기를 쓸 때 날씨표현 공간은 최소한 한 줄은 되어야 해요. 한마디로 줄공책이 훨씬 낫다는 거죠.

문장으로 날씨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날씨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주세요. 등교 길에 하늘을 바라보고 떠오른 것을 써보게 하고, 바람이 스쳐 지나갔을 때 느껴진 기분 같은것을 써보게 하세요. 오늘 본 자연의 색은 무엇이었는지, 날씨에 따라 자연이 변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곰곰이 떠올려보고 날씨를 쓰는 것은 굉장히 재밌는 일이 될 거에요. 한 번 시도해보세요. 아이들의 상상력에 한 번 놀라고 순수함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놀라실 거예요 사실 저도 일기장 검사하다가 깜짝 깜짝 놀라거든요. 아이들 일기장 날씨만 봐도 전날의 기분과 오늘 아침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게 되더군요.

경민이 일기

석현이 일기


◇ 제목은 하나의 단어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자

아이들에게 일기에 제목을 붙이라고 하면 대부분 단어 하나로 표현하는데 정작 일기 내용을 보면 이러한 제목만으로는 유추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아요. 일기 제목이 글감이나 중심 생각과 중심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단어 하나로 표현하게 되면 너무나 추상적이고 개괄적이기 때문에 제목으로써의 제 몫을 하지 못하게 되죠. 예를 들어 일기의 내용이 '친구와 싸운 일'이라면 제목은 '친구'가 아니라 친구와 싸운 사건이나 그때 느낀 감정을 '억울했던 ○○와의 싸움'과 같이 사건과 감정이 나타나게 구체적으로 쓰도록 하는 거죠.

단어에서 단어구나 절로 제목을 표현하는데 익숙해졌다면 이번에는 좀 더 발전시켜보세요. 예를 들어 아이의 오늘의 일기 제목이 '소고기 무국', '불고기'였다면 이 제목에 구체적인 상황이나 느낌을 담은 몇 개의 단어를 덧붙여 '소고기 무국을 만드는 엄마의 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져요.' 와 '불고기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등과 같이 문장으로 표현된 제목을 붙여 보는 거죠. 이럴 경우 제목은 일기 내용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응집력'을 가지게 되요. 그러므로 제목을 적는 공간도 최소한 한 줄은 되어야 해요.

◇ 문단 쓰기를 시작해 보자

초등 1-6학년 아이들이 일기 쓸 때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내용과 상관없이 줄을 바꾸고 문단을 여러 개 만드는 거예요. 이럴 경우 짜임새 있는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문단 앞에 ①②③의 수를 적어 문단을 구분해 주어 3문단 일기를 쓰게 해보세요. ①문단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②문단에는 사건이 발생할 때 ③문단에는 사건 후의 생각과 느낌을 적도록 하면 아이들은 인과 관계와 반성이나 성찰의 과정을 짜임새 있게 적어 나갈 수 있답니다.

3문단 쓰기에 익숙해지면 문단을 구분하던 숫자는 더 이상 쓰지 않고 각 문단 앞에 한 칸을 비우고 쓰도록 지도하세요. 이런 식으로 2-3번만 해보면 아이들은 금세 자신이 쓴 일기를 보며 문단은 어떻게 나누어야하며 어떤 내용으로 일기를 써야 하는지 알게 되더군요.
아이가 일기를 쓸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 일과를 쭉 나열하는 식의 일기를 쓰고 있다면 지금 바로 3문단으로 일기 쓰기 방법을 실천해보세요. 아이들이 하나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일기장에 관해서는 드리고 싶은 말이 참 많네요. 다음 칼럼에 계속 할게요.

김범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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