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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일기장이 아니다, 내 아이의 역사책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부모1 : 우리 애는 예전에는 일기를 잘 썼는데 갈수록 일기 쓰는 걸 싫어해요.
'담임은 일기지도를 제대로 안했고 부모는 아이 탓으로 돌리고 있군'

학부모2 : 일기장은 아이가 개인적인 생각을 담는 것인데 부모와 담임교사라는 이유로 아이 일기장을 몰래 들춰보는 건 사생활 침해 아닌가요? 그래서 전 일부러 보지 않아요.
'아무리 아이가 조숙하다고 해도 4학년 이후에나 그러지말야. 일기지도는 하고 저러시나'

자녀가 초등학생이면 읽으세요.

당신의 아이는 일기를 숙제꺼리로 생각하나요? 아니면 자신의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나요? 중요한건 아이가 일기를 쓰기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아이에게 일기장이란 건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책이라는 말을 먼저, 항상, 꾸준히 들려 줄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단기 4341년 3학년-1호 역사책 편찬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드님~'

이런 생각으로 일기장을 열게 되면 아이들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매일 매일이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신선한 일기를 쓸 수가 있답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사소한 일들도 모두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늘 벌어지는 다음과 같은 소재도 훌륭한 일기감이 된다는 거죠.

- 친구들의 싸움 구경, 점심 먹는 아이들의 모습 관찰하기, 내가 정한 우리 선생님의 짜증나는 습관 big3, 내 짝의 좋은 습관 10가지, 나 홀로 오늘의 지각생에게 별명 붙이기 -

1. 내 아이 역사책에 끼어들기

회장이 된 하진이의 일기

학부모님들도 어떤 특별한 날은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평소에 일기를 써보지 않아서 혹은 일기장이나 메모장 등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마땅한 공책이 없어서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말 때가 있죠. 바로 그런 날! 제가 일기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자녀가 쓰는 일기장을 가져오게 해 오늘의 일기 아래쪽에 작은 공간 하나 만드세요. 그리고 나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적어 보세요. 의외로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모님의 흔적에 매우 좋아 한답니다. 일기검사 대신 자녀의 역사책에 나도 좀 끼워 달라고(나도 등장하자고) 부탁하시는 거죠. 아이들은 선뜻 내어 줄 겁니다. 현재 제가 담임으로 있는 고양용현초 3-1반 학부모님들께서는 '내 아이 역사책 끼어들기'에 즐겁게 참여하고 계십니다. 아주 멋진 엄마아빠 많으시다는 걸 이럴 때 느껴요. 사진하나 첨부하죠.

아버지가 딸에게 쓴 편지-하진이의 일기


부모가 매일매일 일기 봐준다는 건 결국 노동이 되고 말죠. 결국 불명예퇴직을 하게 될테고. 아이도 매일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부모라고 빠짐없이 일기를 지도해주는 것이 어디 쉽나요?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해야 한다면 즐거운 일기 지도가 될 수가 없어요. 사실 그럴 필요도 없구요.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부모님의 일기 지도 방법은 '일기 썼니?'라고 물어보는 걸로 확인하거나 일기 쓴 양을 확인하는 정도라고 하시더군요. 좀 더 적극적이신 부모님들께서는 맞춤법과 내용 중심으로 검사하시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런 식의 일기지도는 아이가 일기쓰기를 일종의 ‘글쓰기 과제’로 인식하게 해요. 결국 일기검사에 거부감을 갖게 되죠.

그보다는 가끔씩 자녀가 당일 쓴 일기의 하단 왼쪽에(공책 여백이 없을 때는 맞은편 페이지 한쪽 면에) 부모님의 일기를 써 주세요(아이와 부모 일기가 서로 마주보게 써야 좋아요). 바쁘면 아이 일기에 댓글이라도 달아주세요. 가끔씩 써주는 부모님의 필체가 아이의 가슴을 얼마나 뜨겁게 만드는지 모르시죠?

다른 반 담임은 다 해준다는데 담임이라고 걸린 사람이 일기장에 댓글 안달아주고 싸인만 한다고 짜증내지 마시고... 그럴 땐 내 아이 부모가 먼저 관리하세요. 그럼 하단 오른쪽에는 뭐하냐구요? 왠만한 담임이라면 그 자리에 댓글을 달아주죠. 부모님의 일기에 담임교사의 댓글까지 더해진다면 아이의 일기장은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이-부모-교사의 열린 대화의 공간이 되요. 이렇게 되면 학생-학부모-교사가 등장인물이 되어 ‘내 아이의 역사책’을 만들어가는 공동 역자가 되는 첫 단추를 아주 잘 끼우신 거예요.

성은이의 일기

부모님과 담임의 댓글이 있는 우석이 일기


2. 서로에게 댓글 달기, 댓글에 댓글달기, 댓글에 규칙 정하기

아이의 일기에 부모나 담임교사가 댓글을 달아주면 아이가 댓글을 보고 또 다시 댓글에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해 보세요. 부모나 교사가 매번 훈화나 교정의 목적으로 댓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때론 이런 댓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의 글쓰기나 생활지도까지도 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부모와 교사가 댓글에 '바른 글쓰기, 많이 쓰기, 문장부호 사용하기, 의성어와 의태어 넣기, 이어주는 말(접속사) 3개쯤 자연스럽게 쓰기' 등을 적을 경우 아이는 지난 일기의 댓글을 읽은 후 댓글을 달고 나서 새로운 일기를 쓰게 되기 때문에 반복되는 실수를 줄일 수 있게 되는거죠. 즉, 아이는 댓글로 달린 부모의 말이나 교사의 말을 잔소리가 아니라 ‘댓글달기’라는 일종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훈육적 대화의 장으로 일기장을 사용하면 좋아요.
하지만 댓글이 아래와 같은 식(󰀨)이 되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엄마 : '미술 준비물을 가지고 안가지고 가서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구나. 엄마가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네. 앞으로는 혜민이도 친구들을 도와주는 멋진 학생이 되길 바란다.^^
혜민 : 네.

부모가 단답형의 답을 유도하는 댓글을 쓴 것도 문제지요. 이럴 경우 댓글 다는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이때 미리 규칙을 만들어 놓는 것 보다는 댓글 달기를 통해 '댓글 규칙'을 서로 만들면 좋아요. 예를 들어 단답형으로 댓글 달지 않기나 앞사람이 쓴 댓글 길이만큼 댓글달기 등의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는데 이것도 일방적인 통보 보다는 이런 방식이 좋아요. 아이가 위의 예시와 같은 댓글을 단답형으로 단 날 이런 말을 해주는거죠.

부모 : 혜민이의 댓글이 너무 짧아서 엄마가 조금 섭섭했는데... 혜민이가 어떻게 댓글을 달면 엄마가 재미있을까?
혜민 : 나두 엄마처럼 재미있게 쓸게. 길게 써줄까? 히히

이런 식의 댓글을 다시 달아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거죠. 자연스럽게 서로의 규칙을 만들어 간다면 아이들은 꼭 지켜야하는 '금지로써의 규칙'과 같은 거부감이 안들고, 대신 '놀이로써의 규칙'과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되요.

댓글에 댓글을 다는 강노의 일기


마지막으로 담임교사의 입장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어요. 이건 핑계인데요. 한 반에 30명 넘는 아이들 일기를 대충 한 번씩 읽어 봐주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려요.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들 일기에 빠짐없이 댓글을 달아주었다고 자부하는 저이지만 학교 업무에 치이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종종 바른 글씨체로 못쓸 때가 있어요. 간혹 '교사라는 인간이 한 두 줄 써주면서도 글씨를 이렇게 쓰니 내 아이 글씨가 이 모양이지'하며 책망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도 노력할테니 부모님들도 애들 일기장에 바른 글씨로 글을 적어 주세요.

다음 칼럼에서도 1. 내 아이 역사책에 끼어들기 와 2. 서로에게 댓글 달기, 댓글에 댓글달기, 댓글에 규칙 정하기에 이어 본격적인 일기 지도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범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