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패한 100일 인정하고 새 출발 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최근의 대규모 시위사태는 정권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다. 정권이 동력을 잃으면 남은 4년9개월은 어찌될지, 경제 살리기 같은 민생의 과제는 제대로 될지, 대통령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 사안마다 촛불을 들고 도심을 막고 경찰을 밀어붙이면 사회는 어찌 되는 건지, 또다시 5년 정권의 실패를 봐야 하는 건지, 걱정이 마음을 짓누른다.

위기를 초래한 이도 대통령이지만 해결할 이도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다는 결연한 자세로 위기를 수습해야 한다. 대통령은 원로 등을 만나 조언을 듣고 5일께 국정쇄신책을 발표하며 며칠 후 국민과의 대화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여론수렴은 겸허하고 진지해야 하고, 국정쇄신은 근본적이고 과감해야 하며, 대화는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사태의 근인(近因)은 쇠고기지만 원인(遠因)은 정권의 신뢰 상실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이를 믿지 못한 것은 정권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신뢰만 있었어도 이런 파동은 없었을 것이다. 일부가 진실을 왜곡하려 해도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신뢰 상실에는 대통령의 책임이 제일 크다. 하지만 내각이나 대통령실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도 크다. 협상을 잘못한 것은 농림수산식품부지만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건 내각 전체의 책임이다. 쇠고기에 대해 내각적 차원의 대책이 과연 있었는가. 그 점에서 내각 전체가 책임져야 마땅하다. 내각은 책임지는 모습으로 신뢰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대통령실의 책임도 내각 못지않다. 단지 몇 명의 장관 또는 수석의 교체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30개월 이상 소를 꼭 수입해야 하는지도 원점에서 검토시켜야 한다. 비록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국민이 못 믿겠다는데 굳이 고집할 이유가 있는가. 30개월 이상은 당분간 유예할 수는 없는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광우병 불안에 대해 국민이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한 것은 당당하게 설명해야 한다. 전문적 지식의 도움이 필요하면 참모나 관계 전문가를 배석시키면 된다. 동시에 대통령은 국민의 궁금증과 불만을 모두 들어야 한다.

야당과 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재협상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는 있지만 이는 국제관계의 신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할 문제다. 신중한 고려 없이 불쑥 얘기만 꺼냈다가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협상 보완이나 추가 협상이 가능한 건지, 혹은 왜 불가능한지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오늘이 탄생 100일이다. 지금 보면 실패한 100일이었다. 새 출발이 필요하다. 문제는 두 줄기로 요약된다. 협상 잘못은 과감하게 보완하고, 책임자들에게는 단호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 뒤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라. 이런 결연함을 보이면 돌파구는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실수해 놓고 요리조리 회피하는 정부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새 길을 모색하는 정부가 더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