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갇힌 아이들] 5. 김주영씨가 찾은 공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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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주영씨가 ‘가난에 갇힌 아이들‘을 찾아갔다. 환갑을 훌쩍 넘긴 소설가는 한동안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30일 서울 북아현동의 공부방 ‘나무를 심는 학교’ 미술시간에.

낡은 전선줄이 대추나무 가지처럼 엉켜 하늘을 가린 서울 북아현동 충정지역. 주소를 손에 쥐었다 하더라도 좀처럼 찾기 힘든 골목 안의 공부방. 그곳에서 박지성(11.가명)군을 만났다. 朴군의 하루 일과는 말 그대로 정처없는 나그네다. 아침은 쉼터에서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내주는 무료 급식으로 때운다. 그리고 공부방에서 제공하는 저녁밥을 먹고 밤에는 다시 쉼터의 조촐한 잠자리로 돌아간다.

朴군의 태도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6세 때 엄마는 가출했고, 철부지 나이에 혈혈단신이 된 아이를 고모가 키우다가 쉼터에 맡겨버렸다. 아빠는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으로 장기 입원 중이다. 朴군이 정기적으로 쉼터를 찾고 있는 것은 이곳에 오면, 스스럼없이 상대할 수 있는 형들과 또래들이 있어 그들과 살을 비비며 부둥켜안고 뒹굴며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곳에서 만난 송혜숙(10.가명)양은 朴군과는 달리 안경공장에 다니며 가까스로 가계를 꾸려가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무절제한 가정폭력을 일삼다가 지금은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다. 宋양이 이 곳을 찾아오는 까닭도 역시 朴군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언니나 또래 대부분이 쉼터에서 생활하고, 자주 만나게 되면서 끈끈한 동료애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로 그림공부를 가르치는 대학생 언니가 있고, 영어를 가르쳐 주는 키큰 언니도 있다. 이곳 아이들은 4, 5학년이 되어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없는 것은 공부다.

무허가 건축이기 때문에 구청에서 배정해 주는 쥐꼬리만한 보조금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작고 초라한 교회를 꾸려나가는 심상혁 목사의 얼굴에서, 그러나 좌절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하고 누추한 교회와 버려진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래서 보장도 없는 희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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