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놀이, 휴식 그리고 호의적인 인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저자는 1980년대에『기다리는 부모가 큰 아이를 만든다』라는 책을 써 주목받은 아동심리학자입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아이들의 자기주도적인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아이들의 자유시간은 1주일에 모두 12시간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환상, 상상력, 창조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기질을 활용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 전문가인 그에게는 걱정스러운 현실인 것이지요.

책 말미에서 저자는 ‘놀이의 힘’을 보여주는 예로 1949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일화를 소개합니다. 한 남자가 어릴 때 연날리기를 회고한 글입니다. “연 날리기에 이만큼 좋은 날이 또 있을까?(…) 가끔 천천히 줄을 잡아당겨 까딱까딱 내려오게 하다가,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면 이보다 더 재밌는 일은 없었다(…)부모님은 할 일도 잠시 잊고 권위도 벗어던지셨다. 아이들은 싸움도 심술도 모두 잊었다. 아마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이 남자는 2차 세계대전 때 포로수용소에서 1년 넘게 생활하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연을 날리던 그날을 떠올렸다고. 그는 어릴 때 즐겁게 놀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편안함과 위안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하다면 어른들에게는 휴식이 소중하지 않을까요. 버르란트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70쪽, 8800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 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세상을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본 구석도 없지 않지만, 이 말은 그리 틀리지도 않아 보입니다. 러셀은 교육에 대해서는 이런 지적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호의적인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변을 호의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호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아주 휴머니스틱한 이유 때문에라도 놀이와 휴식의 가치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