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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중풍] 연극인 성병숙은 … 치매만 안 걸리면 좋겠다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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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숙<左>씨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 조옥현<中>씨를 딸 서송희씨와 함께 수발해왔다. 이들의 미소에서는 그간의 고통과 애환을 찾기 어렵다.

21일 서울 돈암동 연극인 성병숙씨 집. 성씨의 어머니 조옥현(78)씨는 “춥다”며 코트를 입고 있었다. 바깥 기온은 20도가 넘어 반팔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씨의 표정은 평화로웠다. 낯선 사람들에게도 활짝 웃었다. 조씨는 “내가 몸이 안 좋아… 다리도 불편하고… 어디 좋은 병원 아우”라고 묻기도 했다. 성씨는 “치매 진행이 더딘 편이라 다행”이라며 “의사도 드문 경우라 하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에게 치매가 온 것은 3년 전이다. 8년째 중풍을 앓던 성씨의 아버지를 간호하던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집을 못 찾은 일이 벌어졌다. 불안해진 성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당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어머니가 집안의 기둥이었는데….”

고집 센 아버지가 중풍으로 오른손과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늘어난 짜증도 다 받아낸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원하면 한밤중에 밖에 나가 설렁탕도 사 오던 분이었다.

“다리를 다쳤다면 고치면 돼요. 하지만 사람 뇌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성씨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을 예감한 듯 평소 입버릇처럼 “치매만 안 걸리면 좋겠다. 너를 힘들게 하면 안 되니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성씨는 치매에 걸린 이후 어머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200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동문서답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화장실에서 그릇을, 다용도실에서 몸을 씻기도 했다. 언젠가는 10년치 가족 사진을 다 찢어 버렸다. 새벽 3시면 일어나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 정리했다. 손녀 서송희(25)씨의 옷과 반지를 가져간 일도 있다. 송희씨는 “처음에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못 믿었어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갑자기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하시니 순간순간 놀랍고 슬펐어요”라고 했다.

이후 성씨는 어머니에게 건강식품을 꼭 챙겨드렸다. 오전 산책과 병원 가는 것은 거의 항상 함께했다. 어머니 생활 시간에 맞춰 오전 3시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잠드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저녁 약속도 만들지 않은 지 거의 3년이 돼간다. 어머니와 화투도 곧잘 친다.

연극 등의 일은 낮에만 하려고 노력한다. 어머니의 벗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월·수·금, 화·목·토에 대화 상대가 될 할머니도 고용했다. 요양원도 알아봤지만 키우는 강아지 ‘향기’와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포기했다.

성씨는 어머니 건강식품 비용으로만 한 달에 60만원을 쓴다. 병원비·도우미 비용까지 합치면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성씨는 “무조건 많이 벌어야 하니 일이 들어오면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며 “외동딸인 데다 내가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하니 매달 택시 미터기가 올라가는 듯해 걱정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성씨는 “그래도 포기는 없다”고 했다. 그는 “치매를 앓는 이의 행동에 화를 내면 더 난폭해진다고 들었다”며 “항상 웃으며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받아들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창규·김은하·백일현·박수련·장주영·김진경 기자, 고종관 건강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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