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중풍] 가수 현숙은 … 대소변 못 가리는 아버지 다리 못 쓰는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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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숙씨와 성우 겸 연극배우 성병숙씨에게는 ‘효녀 연예인’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정작 두사람은 이 말을 끔찍히 싫어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부모님의 투병을 지켜본 것 뿐인데 주변에서 치켜세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7년간 치매를 앓은 아버지와 28년간 뇌졸중(중풍)으로 고생한 어머니를 떠나보낸 현숙씨. 8년간 중풍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3년째 치매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는 성병숙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현숙씨 어머니가 중풍과의 싸움을 시작한 때는 28년 전인 1980년이다. 연예인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딸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다리 마비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런 몸으로도 어머니는 새벽 4시에 돌아오는 딸을 위해 기어서 문을 열어줬다. 그때만 해도 견딜 만한 시기였다.

불행은 함께 온다고 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91년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곁에 두고도 밤새 “현숙아! 현숙아!” 소리치며 딸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을 새운 지 며칠 후 아버지는 외출했다가 길을 잃었다. 다행히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딸이 현숙이라고 하는 노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현숙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온 뒤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웠다. 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의 연락처를 아버지의 속옷에 바느질로 새겨 넣었다. 겉옷은 없어질 수 있어도 속옷은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현숙씨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현숙씨는 결혼하지 않은 딸이 가장 편할 거라는 생각에 부모님을 자신의 집에 모셨다. 낮에는 다른 형제의 도움을 받고, 밤에는 자신이 수발을 맡았다. 아버지의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고함을 치고, 밤새도록 서류를 찾고, 딸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기 일쑤였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부모님 몸도 직접 씻겼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 구석구석 닦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밤을 보내면 낮에는 방송국이든 차 안에서든 토막잠을 잤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고함도 자장가로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간병인은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꺼리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딸이 지방 공연을 가느라 안 보이면 얼굴이 까칠해지고 변을 2~3일씩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아예 부모님을 모시고 일하러 가기도 했다. 여의도 방송국이든, 한강 인근에서든 공연할 때는 제일 앞자리에 앉게 해드렸다. 현숙씨는 혼자 운적이 셀 수도 없다고 했다. 아파서 쓰러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병원비·약값만도 상당했다. 하루에 20개씩 쓰는 기저귀값, 호스를 통해 액체로 식사하는 것 모두 돈이었다. 한 달에 부모님께 들어가는 돈이 수백만원을 넘었다. 그는 “하늘이 도우셨는지 딱 필요한 만큼 일이 끊기지 않아 다행이었어요”라고 그때를 기억했다.

아버지는 결국 96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떠난 뒤 치매 증세를 보이다 지난해 85세의 나이로 아버지 곁으로 갔다.

대한치매학회 치매홍보대사인 현숙씨는 “치매를 옛날처럼 대소변을 벽에 칠하는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치료하면 일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대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도 치매를 앓는 할머니·할아버지를 보여줄 것을 제안했다. “동생들의 애가 다섯 있는데, 조카에게 할머니 기저귀 가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여줬어요. 편해지니 애가 어머니 호스를 갖고 놀더라고요. 이렇게라도 할머니를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는 요새 전라북도·울릉도·경상도·충청남도 등 전국 곳곳에 4800만원짜리 이동목욕차량을 기증하고 있다. “치매 어른들이 목욕을 하면 얼마나 개운해 하는데요. 우연히 이동목욕차량에 대해 알게 된 뒤 한 달에 400만원씩 모아요. 전국에 이동목욕차량이 다 돌아다니게 하는 게 꿈이에요.”

◇특별취재팀
김창규·김은하·백일현·박수련·장주영·김진경 기자, 고종관 건강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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