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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시대가 그들을 부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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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04면

시대가 영웅을 만드나, 영웅이 시대를 만드나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일까, 영웅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할리우드의 수퍼 히어로 영화 ‘아이언맨’으로 풀어 보자면 시대의 힘이 조금 더 우월한 것 같다. 천재 과학자이자 무기상인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란 수퍼 히어로가 된 것은 자신이 만들고 판 무기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수퍼 히어로 80년: 만화에서 영화로, 영웅에서 이웃으로

우리 편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믿은 무기가 적군이 아니라 동료와 민간인에게 쓰인다면 대부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아군과 적군이 분명한 시대였다면 아무리 무기를 많이 팔아도 토니 스타크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는 내 편과 네 편의 구분이 모호하고 군인과 테러리스트·민간인의 구별이 무색해지는 시대다. 토니의 각성은 이 시대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이언맨’의 경우가 보편적인 예라고 하기는 힘들다. 아이언맨은 일반적인 수퍼 히어로와 조금 다르다. 초능력을 가진 보통의 수퍼 히어로와 달리 아이언맨은 배트맨과 퍼니셔처럼 육체의 힘을 극대화하고,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초인이 되는 경우다. 대부분의 수퍼 히어로는 초월적인 능력을 갖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수퍼 히어로가 되지만 아이언맨과 배트맨은 자신의 결단으로 수퍼 히어로가 된다. 복수건 정의감이건 상관없지만 그 이유는 대체로 외부에서 온다. 그 시대와 사회의 공기가 그들을 수퍼 히어로로 재생시키는 주된 이유다.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각양각색 영웅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수퍼 히어로인 수퍼맨은 외계의 크립톤 행성에서 날아와 미국 시민으로 살아간다.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수퍼맨은 바깥에서 이민을 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이웃인 것이다. 미국인은 수퍼맨의 정직하고 순수한 태도에서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어둠의 존재인 박쥐를 형상화한 배트맨은? 금주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의 범죄조직은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거대한 범죄조직은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고, 보통 사람에게도 일상적인 위협이 되었다. 배트맨은 그런 범죄자를 소탕하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만화와 영화 속의 수퍼 히어로는 그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는 존재다. 한 시대를 반영하고, 대중의 욕망과 소원을 ‘초능력’에 반영하는 것이다. 1929년 미국만화에서 최초로 등장한 수퍼 히어로 ‘버크 로저스’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지구의 모든 것을 탐험했던 인간의 다음 도전 상대인 우주에서 활약한다.

이후 DC 코믹스의 ‘수퍼맨’ ‘배트맨’에 이어 39년 시작된 마블 코믹스에서는 ‘서브 마리너’ ‘휴먼 토처’ ‘샌드맨’ 등이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수퍼 히어로들은 독일군과 일본군을 물리치는 애국주의적 영웅으로 전화한다.

맹목적 정의에서 다양한 공존으로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던 50년대가 지나고, 60년대로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흑인·여성운동 등 민권운동이 격렬해지고, 65년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프랑스의 68혁명이 일어났다.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다양한 집단이 서로 갈등하면서도 평화를 갈구하는 시대의 기운은 당연히 수퍼 히어로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마블 코믹스는 61년 ‘판타스틱 포’, 62년 ‘스파이더맨’, 63년 ‘엑스맨’을 차례로 내놓기시작했고, 이것은 스탠 리와 자크 카비 콤비가 이끄는 마블 혁명으로 불리게 된다.

새로운 유전자로 인해 돌연변이가 된 엑스맨의 이야기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세대 간의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파이더맨은 사춘기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피터 파커의 모습을 통해 청소년들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성장통을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우울한 70년대의 사회상을 그린 이언 감독의 ‘아이스 스톰’에서 막 대학생이 된 소년은 ‘판타스틱 포’를 탐독한다. 자신의 기괴한 모습에 괴로워하면서도 정의를 위해 싸우는 판타스틱 포의 모습은, 일그러진 기성세대에 반항하면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 젊은 세대의 초상이었다.

미국만화 속 수퍼 히어로의 모습이 다시 한번 변화한 것은 ‘씬 시티’의 공동 감독이기도 한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인 앨런 무어의 ‘워치맨’이 출간된 86년의 일이다.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는 일면적이었던 영웅의 캐릭터에 과격한 폭력 묘사와 정치·철학을 집어넣어 수퍼 히어로의 유년기를 마감하고 성인의 문학인 그래픽 노블로 한 단계 끌어올린다.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 이후에 등장한 수퍼 히어로들은 단순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정의를 위해 맹목적으로 싸우던 수퍼 히어로의 내면은 복잡함을 넘어 균열이 일어나고, 선악의 구별이 모호한 수퍼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데어 데블’은 맞서 싸우는 악당들보다 야비하고, 폭력적이고, 수단방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퍼 히어로다.

SF·모험·공포, 각종 ‘맨’ 영화와 만나고 헤어지다
80년대 중반 만화의 혁명이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만화가 소수의 오락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점도 있다. 다수의 대중은 만화보다 만화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열광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커스가 부활시킨 SF영화·모험영화·공포영화 등은 킬링 타임용의 오락으로 최상급이었다.

또한 과열된 냉전체제는 ‘록키’와 ‘람보’ 같은 상처받은 영웅들을 수퍼 히어로로 만들었다. 1편과 달리 ‘록키’와 ‘람보’는 편을 거듭하면서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 만화 속 수퍼 히어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냉전이 몰락하면서 함께 몰락했다.

90년대 이후 스크린에 속속 등장한 수퍼 히어로들은 각양각색이다. 엑스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수퍼맨은 여전히 가족을 찾고 있다. 배트맨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음울한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반대로 아이언맨은 농담처럼 수퍼 히어로 역할에 몰두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수퍼 히어로에게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악과 결탁하여 청부업자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영웅 놀이에 뛰어드는 것도 가능하다. ‘보통 사람과 다른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퍼 히어로의 고뇌라도 보통 사람이 갈등하는 정체성의 고민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곧 개봉을 앞둔 윌 스미스 주연의 ‘핸콕’에는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까칠한 성격 탓에 말썽만 일으키고, 사람을 구해줘도 뭔가 문제가 생기는 수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일반적 수퍼 히어로의 원칙 같은 것은 이미 소용이 없는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가 보여준 것처럼 이제 신과 구세주는 누구나 가능하고, 가상현실은 곧 현실과 다르지 않다. 수퍼 히어로도 결국 인간이고, 보통 사람과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이미 우리들은 누구나 인터넷 게임 속에서 수퍼 히어로나 무림의 절대고수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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