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부정축재 사건 외국언론의 시각-아사히신문 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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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의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검찰당국의 신문을 받았다.역대대통령 가운데 사직당국의 조사를 받기는 盧씨가 처음이다.오랫동안 한국정치의 어두운 부분이었던 대통령과 재벌의 유착구조에 메스가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盧씨는 거액의「통치자금」을 몰래 모았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국민에게 사죄했다.그러나 국민들의 분노는 수습될 것같지 않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부정축재」라고 검찰당국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사건은 정계와 재계를 뒤흔드는 의혹사건 으로 발전할 기세다. 盧씨가 고백한 비자금은 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액수에 이른다.『주로 기업가들에게서 기부금으로 받았다』고 盧씨는 말했지만 그 이상은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차세대전투기 기종선정과 대형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뇌물 수수가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의혹이 소용돌이치고 있다.사건 규모는일본의 록히드사건과 리크루트사건을 훨씬 웃돌고 있다.한국은 강력한 정권과 재벌이 하나가 되어 경제를 발전시 키는「개발독재형」 정책을 계속 펼쳐왔다.그 뒷면에 쌓이고 쌓인 왜곡상이 경제발전.사회성숙.민주화진전과 함께 이제 막 분출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민주화선언을 하고 전임대통령인 전두환(全斗煥)씨의 부정축재를까발려 산사(山寺)로 내몬 盧씨가 이번엔 추궁받는 입장이 됐다.이것도 민주화의 과정일는지 모른다.거액의 돈은 어디에 사용됐는가.盧씨는 말한다.『통치자금은 우리나라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다.재임당시의 정치문화와 선거풍토로 볼 때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한국의 선거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고 한다.그러나 놀랍게도 92년 대선때 김영삼씨와 싸운 김대중(金大中)씨에게까지 盧씨측이 2억엔(20억원)이 넘는 돈을 건네줬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김대중씨가 폭로했다.
김대중씨는 金대통령도 거액의 자금을 제공받았다고 몰아붙였지만金대통령은 부정하고 있다.한국정계의 실력자인 김종필(金鍾泌)씨에게도 돈을 전했다는 보도도 있다.「3金1盧」로 불리는 한국정계의 「거두(巨頭)」 모두에게 의혹의 시선이 쏠 리고 있다.
한국은 내년에 총선거,97년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같은 민주주의 이웃으로서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이 정치와 돈의 불건전한 구조를 개혁하는 쪽으로 나아가길 바란다.이를 위해서라도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불가피할 것이다 .
[정리=이철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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