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 나! 리모델링] 힘든 일 없는 것도 스트레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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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원 K씨(38)가 상담실을 찾았다. 주된 문제는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싫증과 권태만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었다. 결국 그와 내가 동의한 것은 ‘힘든 게 없다는 것!’ 그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사실이었다.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와 나쁜 스트레스(distress)로 나뉜다. 나쁜 스트레스는 다시 스트레스 과잉(hyper-stress)과 스트레스 결핍(hypo-stress)으로 나뉜다. 즉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스트레스가 적은 것 역시 문제다. 스트레스가 적을 때 우리는 권태를 느낀다. 어찌 보면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자극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권태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이 여전히 권태의 몸살을 앓고 있다. 사는 낙이 없다고 아우성들이다. 느림 없는 빠름 역시 단조롭고 반복되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과잉은 우리의 감각을 계속 둔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집단 둔감증의 사회에 권태는 점차 만연해가고 있다.

권태에 빠진 사람들은 일탈을 꿈꾼다. 권태는 종종 중독, 폭력, 불륜과 같은 파괴적 일탈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어떤 이는 사람을 죽여놓고 ‘심심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일탈은 또한 삶에 포인트를 준다. 꽃구경을 가고, 공연을 가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등 우리는 둔감해진 감각에 새로운 자극을 선사한다. 어디 그뿐이랴! 삶의 지독한 권태 때문에 누군가는 붓을 잡고, 카메라를 들고, 춤을 추고, 글을 쓰는 등 자신을 노래하거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한다. 창조야말로 가위 일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시대에는 일탈 자체가 문제시되었다. 하지만 21세기 신유목민 사회에서는 파괴적 일탈, 즉 탈선은 물론 무일탈(無逸脫) 혹은 현실 안주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21세기에 절대적인 안전지대란 없으며 누구나 많은 일을 하고 다중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데니얼 레빈슨은 삶이란 ‘정착’과 ‘이주’의 연속이라고 보았다. 즉 6~7년의 안정기와 4~5년의 전환기가 반복되므로 삶에서 안정감은 7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권태란 안정기의 유통기한이 끝남을 알리는 생애 전환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뇌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새로움과 놀라움이 주어지면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우리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도파민이 주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으려면 도파민과 함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함께 분비돼야 한다. 즉 능동적인 도전을 통해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얻어낸 즐거움이야말로 오래가는 것이다. 고통을 거치지 않는 즐거움이란 중독의 지름길일 뿐이다. 화려한 게임과 마라톤 완주의 즐거움을 비교해 보라.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썩어가듯이 삶도 틀 안에 갇히면 죽어간다. 벗어나라! 삶을 다시 흐르게 하라! 권태의 가장 확실한 치료제는 ‘도전’이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권태 탈출 일곱 가지 조언

① 삶의 유한성을 확실히 받아들이고 안 하던 것을 하라. 당신이 평균연령 이상을 살 거라고 확신하지 마라. 죽음은 우리 곁에 있으며 원하는 삶을 살아갈 시간은 많지 않다.

②‘내 삶은 즐거운가?’ 묻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을까?’ 묻고 또 물어라. 우리의 뇌는 반복적으로 질문하면 답을 하게끔 되어 있다.

③ 자신을 표현하라. 권태의 반대는 표현이다. 무엇으로 당신을 표현할 것인가?

④ 긍정적 정서의 결을 깨워라. 일상 속에서 숨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권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깊이 느끼기 위해 생각의 안테나를 접고 감각의 날개를 펼쳐보아라.

⑤ 소통하라. 권태는 의미의 부재뿐 아니라 소통의 부재에서 피어난다.

⑥ 추억을 상기하라. 유년기는 즐거움의 보고다. 배고픈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보아라. 그 놀이를 오늘에 맞게 초대하라.

⑦ 형식의 변화를 추구하라. 자신의 스타일과 공간을 바꿔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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