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응징받고 마는 권력부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재임중 비리로 전직대통령의 사죄를 받는 국민의 심정은 한마디로 분노와 착잡,그것일 것이다.전두환(全斗煥)씨에 이어 두번씩이나 이런 국가적 자존심을 손상하는 치욕적 사태에 누군들 통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노태우(盧泰愚)씨의 사죄를 들으며 무슨 처벌이라도 감수하고 출두조사도 받겠다고 밝힌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자기의 말대로 그가 사죄한 것과는 별도로 그에 대한 조사나 처벌문제는 최종적으로 법과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盧씨가 반성과 후회를 표하면서도 밝힌 내용은 전반적으로 너무 소홀하고 미흡하다고 생각한다.문제의 비자금에 대해 그는 「통치자금」이란 말을 쓰면서 5,000억원을 조성해1,700억원을 남겼다고 밝혔다.구체적인 조성경위도,용 처(用處)도 밝히지 않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통치자금」이란 말이 크게 거슬린다.군주나 독재자가 쓸 「통치」라는 말을 명색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직선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하고 있으니 그의 의식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자기를 당시 「통치자」로 착각해 멋대로 비자금도 조성했다는 것인가.
그가 밝힌 자금내용은 검찰수사로 사실부합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우리는 1,700억원외에 새로 비자금이 발견됨으로써 그가 사죄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췄다는 의심을 사는 일이 없기 바란다.그리고 주로 기업인들로부터 받았다고만 한 조 성경위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할 것이다.율곡사업과 다른 국책사업.인허가등에서도 돈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규명돼야 할 것이다.사용처도 좀더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대선자금지원등의 실태를 규명함으로써 정계의 검은돈을 차단하는 계기 를 만들기 위해서도 사용처는 공개돼야 한다.그런 점에서는 盧씨 뿐만 아니라 가령 全씨의 비자금도 의혹이 새로 제기될 경우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盧씨의 경우를 보고 새삼 권력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면서,그러나 그런 부패는 결국 응징받고야 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