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비자금 파문-의문 키운 사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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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27일 대국민사과는 핵심을 피한채 변명으로 일관해 민심만 자극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의문점만 남긴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盧씨는 문제의 비자금이 오랜 관행에 따른 통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통치자금은 검찰수사나 여론에 대한 방어,혹은 해명을 위한 정치적 용어일 뿐이며 법률적으로는 정치자금이나 뇌물에해당한다.盧씨의 주장과는 달리 이 돈은 개인적인 치부나 퇴임후의 신변보장을 위한 특별관리자금의 용도로 조성된게 아닌가 의혹을 낳는다.
***어떻게 모았나 盧씨는 문제의 비자금을 「우리정치의 오랜관행」인 「통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리고 주로 기업인들로부터의 성금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기업인들이 이권과 특혜를 조건으로 하지 않고 성금을 주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6공기간에는 14조원의 예산이 집행된 율곡사업을 비롯,영종도신공항사업,골프장 139개 내인가,원전도입사업,상무대이전,전자교환기구매사업등 각종 이권사업이 있었고 그때마다 각종 리베이트.커미션등의 명목으로 盧씨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검찰수사에서는 특혜의 구체적인 내용과 오고간 검은 돈의 명세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어디에 썼나 盧씨는 비자금의 대부분을 「정당운영비등 정치활동에」,일부는 「그늘진 곳을 보살피거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썼다고 진술했다.그래서 3,300억원을 썼다는 얘기다.
盧씨는 민정당(통합후에는 민자당)에 월 30억원씩 1,800억원,민자당의원및 당직자활동비에 합계 300억원을 썼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그러나 총선때는 별다른 지원이 없었다고 한다.또 재임시절 불우시설에 낸 돈도 일반독지가보다 형편없이 작았다고 한다.그렇다면 사용금액이 본인주장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5,000억뿐일까 盧씨는 5년간 5,000억원이 조성됐다고 주장했다.그러나 4,000억원 비자금설을 터뜨린 박계동(朴啓東)의원은 2,000억원이 더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일부에서는 1조원이 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14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군전력보강사업인 율곡사업의 리베이트비율은 3~4%여서 여기서만도 4,000억~5,000억원이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6공기간중 139개가 허가된 골프장의 허가사례비는 5공시절 1곳당 20억원이었다.현대그룹 의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은 『盧대통령에게는 한번에 20억원이나 30억원을 줬다.적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50억원을 주고 마지막으로 100억원을 줬다』고 말했다.한양사건 당시 배종렬(裵鍾烈)회장은 검찰조사에서 92년 총선전에 盧씨에 게 200억원을 줬다고진술했다.이로 미뤄 각종 의혹사건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모두합하면 5,000억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失機했나 盧씨는 나라와 사회에 되돌려 주어 유용하게 쓰도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여러가지 상황으로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다.그러나 盧씨는 朴의원의 폭로 직후까지도 비자금의 존재에 대해 전면부인했다.盧씨는 퇴임후의 안전보장자금 으로 이 돈을 끝까지 유지.관리하려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또 전격적인 실명제의 실시로 비자금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빼돌리지 못했다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盧씨의정치적 입지와 평소태도로 보아 스스로 전모를 공개하고 헌 납하려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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