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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소는 가만 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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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봄이 깊어갑니다. 진달래와 벚꽃·아기사과 꽃이 진 서울대공원은 주변은 이제 아카시아며 조팝나무, 백당나무처럼 하얀 꽃들로 물들었습니다.

지난 월요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가끔 산에 가다 보면 물도 마실 겸 자연스레 절집을 들르게 됩니다. 간혹 법당 외벽에 그려 있는 소와 동자가 있는 그림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깨우침의 과정을 10단계의 그림으로 표현해 십우도(十牛圖), 또는 첫 번째 과정인 소를 찾아나서는 것을 일컫는 심우도(尋牛圖)라고 불리는 그림입니다. 소를 찾아나선 동자가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소를 찾고 길들여 소를 타고 돌아와선 소와 자기 자신마저 잊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내용의 선화(禪畵)지요. 이처럼 불교에선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에 자신의 집을 심우장이라 한 것도 일제하의 엄혹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려 한 것이겠지요.

지난 주말 자식들과 광우병을 주제로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20대 초·중반인 세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종의 가족 청문회라고나 할까요. 이런 말들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97%가 20개월 미만짜리 소만 먹는다더라’ ‘한국에는 미국에선 안 먹는 30개월 이상짜리만 몰아 파는 거 아니냐’ ‘일단 수입되면 군대나 학교 급식에 반강제적으로 제공되지 않겠느냐’ 등. 사실 이번 쇠고기 협상을 보면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 최근의 오역(誤譯) 파문이 보여준 무능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절차상의 잘못은 잘못이고, 과연 이게 쇠고기 문제의 본질일까요. 본질은 역시 먹어도 되는 거냐 하는 거 아닌가요.

미국에선 97%가 20개월 미만 소만 먹는다는 말, 맞을 겁니다. 20개월이 넘으면 사료를 더 준다 해도 증체(增體)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97%는 그 전에 도축한다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수입할 땐 어떨까요. 시장에 나오는 물량의 97%가 20개월 미만 쇠고기라면 우리가 사오는 물량의 97%도 결국 20개월 미만의 쇠고기가 될 겁니다. 30개월 이상짜리는 다른 나라에만 내다 팔까요. 소시지나 햄버거 패티용 수요가 미국에도 많은데요. 요즘 전교조에선 ‘0교시, 우열반에 미친 소 급식까지 우리 아이들이 미칠 지경’이란 스티커를 붙이고 있습니다. 0교시, 우열반엔 각자의 생각이 있다고 쳐도 학교 급식까지 그렇게 몰아가는 게 과연 온당할까요. 한우가 있고 호주나 뉴질랜드산 쇠고기 같은 대체물이 번연히 있는 줄 알면서, 값싸고 위험한 건 만만한 우리 애들 급식에 반강제적으로 사용케 할 거다. 이건 논리가 아닙니다. 정 못 먹겠다면 다른 대체물을 찾는 능력과 권한이 우리 학교의 교사·학부모회, 학생자치기구엔 없다는 말입니까. 미국 쇠고기가 문제되니까 한우 소비를 늘린다는 미명 아래 군대 배식에서 수입 쇠고기를 없애겠다고 나서는 정부도 딱하지만 선생님들도 그래야만 할까요. 오역 문제도 사안은 한심하지만 본질에 속하는 문제일까요. 소를 원료로 한 동물사료가 소나 양과 같은 반추동물에는 쓰이지 않는다는 건 상식입니다. 일각에선 소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돼지가 먹고 이 돼지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다시 소가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른바 ‘교차감염’ 위험론도 들고 나옵니다. 이건 그야말로 말을 위한 말입니다. 흡연처럼 자신이 선택한 위험에 대해선 감수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위험은 참지 못한다는 심리학도 자주 거론됩니다. 누차 말하듯 쇠고기에도 분명히 대체물이 있고, 이를 육류, 나아가 동물성 단백질로 넓히면 선택지는 아주 많습니다. 혹시 미국산을 한우인 양 속여 팔아 이를 모르고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안도 나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한우의 이력추적제고 엄격한 원산지증명, 월령(月齡)의 분명한 표시 같은 조치입니다. 위험성이 1억분의 1이든 40억분의 1이든 어쨌든 위험한 건 위험한 거니 못 먹겠다는 사람뿐 아니라 속지 않고 사먹을 권리는 모든 소비자에게 있으니까요. 광우병 소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정작 한우 농가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처진 느낌입니다. 오히려 그렇다면 한우 사육이나 도축 시스템은 안전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번지면서 한우 소비가 주는 엉뚱한 부작용마저 우려되고 있습니다.

십우도로 시작한 얘기가 먼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소는 희생과 자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지독지애(舐犢之愛)란 말이 있습니다. 어미소가 어린 소를 핥아주는 모습에서 한없는 자애로움을 본 것이겠지요. 어린이날·어버이날·부처님 오신 날이 모두 모여 있는 이 5월, 소를 보며 불성을 깨치고 자애와 희생을 느끼긴커녕 불신과 불안의 소재로 전락한 소가 안타깝습니다. 소는 늘 가만 있었을 뿐인데….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