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선정이유 모호한 "한국화랑의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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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유럽미술의 동향을 알려주는 화랑들의 최대 잔치인 파리 미술견본시 「피악(FIAC)」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에펠탑 근처에 임시로 마련된 장소에서22번째로 열린 올 「피악전시회」는 행사기간이 과거 10일에서6일로 줄어들고 참여화랑도 160개에서 120개로 40개사나 감소했다.피악의 규모가 이처럼 축소된 이유는 표면상 유럽미술시장의 전반적인 위축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안을 들여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진 피악의 보수성이 스스로 그 위상을 깎아내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때문에 유럽미술의 최신동향을 전해주기 보다는 기존 상품을 포장만 달리해 판매하는 맥빠진 미술시장의 모습이 역력했다.대부분화랑들이 거장이나 노대가의 작품으로 부스를 꾸며 이들의 대규모단체전을 보는 인상을 풍긴 것이다.스위스바젤아 트페어보다 출품작가 선정의 다양성이나 신선함을 찾아볼 수 없고 행사운영도 뒤처진 느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랑팔레라는 전시공간을 이용하지 못하고가건물에 전시장을 마련한 탓에 고도의 문화상품인 미술작품을 전시 소통하는데 불편이 따랐고 관람도 힘들었다.
더욱이 이번 피악은 뒤랑 데세르등 9개 화랑의 보이콧으로 분열상까지 드러냈다.피악의 보수성에 실망한 이들 9개 화랑은 「6월16일의 협력」이라는 조직체를 만들고 20세기 조형예술을 전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미술품 견본시장을 만들 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드니즈 호네 피악회장은 내년을 「한국화랑의 해」로 정하고 가나화랑을 통해 한국미술협회에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영국화랑의 해」였던 올해 피악에 초대받은 영국의 주요 화랑들이 참가를 거부,이번 전시회가 한층 빛을 잃 은 현실에서한국과 관계를 맺으려는 피악의 의도가 혹 한국을 재고품 처리장(?)쯤으로 보려는 것은 아닌지 우리 화랑계가 한번쯤 따져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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