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수 밖에 없는 일 맡아서 이기는 일로 바꾸는 게 신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못 생긴 나무가 숲을 지키는 법이죠. 저도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으로 피선된 김근상(56) 신부를 13일 서울대성당 주위에서 만났다. 그는 ‘신부의 손자’이자, ‘신부의 아들’이다. 외할아버지도 성공회 신부였고, 아버지도 성공회 신부였다. 성직자의 피를 속이지 못해서일까. 그는 젊어서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결심’을 말했다.

“어머니는 다리미질을 하고 계셨어요. 앞에 가서 ‘신학교에 가겠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들고 있던 다리미가 날아왔어요. ‘어떤 사람을 (아내로) 데려다가 또 고생을 시킬 거냐고 하셨죠. 신부의 딸, 신부의 아내로서 그만큼 고생이 많았던 거죠.”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평양에 남았다가 순교한 이원창 신부다. 영국왕 헨리 8세 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독립, 영국의 국교가 된 성공회는 사제의 결혼을 허용한다.

그렇게 그는 순교자 집안 출신이다. 그런데도 ‘남북 화해, 남북 교류’에 대한 일은 발을 벗고 나선다. 이유를 물었다. “아프리카에서 보고 느꼈던 고통과 슬픔을 북한에서도 똑같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건 같은 동포라서가 아닙니다. 다만 한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인 거죠.”

그의 세례명은 ‘바우로’다. 표기가 특이했다. ‘바울’도 아니고, ‘바오로’도 아니었다. “성공회에선 ‘바우로’라고 부르죠. 그런데 ‘바울’이든, ‘바오로’든, ‘폴’이든 아무도 개의치 않아요. 그게 성공회의 장점이죠.”

사실 종교계에서 ‘호칭’은 무척 민감한 문제다. 개신교에선 유일신을 강조하는 ‘하나님’, 가톨릭에선 천주의 의미를 담은 ‘하느님’으로 부른다. 그러니 ‘하나님’과 ‘하느님’을 놓고 종교가 ‘쩍’ 갈리고 만다. 김 신부는 “성공회는 ‘하느님’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천주’든, ‘한울님’이든 상관이 없어요. 성공회는 거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게 바로 성공회의 힘이었다. 유연하면서, 또 열려 있었다. 그건 예수를 향한, 본질을 향한 지향을 잊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22일 오후 2시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그는 주교 서품을 받는다. 박경조 대주교가 은퇴하는 내년 1월 하순부터 서울교구장을 맡는다. ‘앞으로 서울교구를 어떻게 끌고 갈 건가’를 물었다.

“질 수 밖에 없는 일을 맡고 싶어요. 그걸 이기는 일로 바꾸고 싶어요. 그게 신앙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성공회에는 ‘젠틀맨’ 혹은 ‘고상함’의 이미지가 있대요. 그걸 불식하며 세상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어요.”

지난 4년간 김 신부는 구리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을 맡았다. “장애인들과 함께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가 겪는 고통 역시 말도 못 해요. 그렇게 우리 사회의 외진 곳을 찾아갈 겁니다.”

그는 대학 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다. 연극 무대에선 배우도 했고, 연출도 맡았다. 김 신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무슨 일이든 저질러라. 실수를 해도 좋다. 대신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김근상 신부=1952년 경기 평택 출생. 신일고-가톨릭신학대 신학부-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 졸업. 8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영등포 교회, 캐나다 토론토 교회, 서울대성당 등에서 시무했다. 서울교구 교무국장과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 상임대표 등을 지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