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를 잡아라!<1> 한국 애니메이션고 & 한국 게임과학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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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계 특성화고가 뜨고 있다. “실업계 고교가 이름만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면 시대착오적이다. 대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가는 곳이 결코 아니다. 대학입시에 유리하다고 알려지면서 관심이 쏠려 오히려 입학하기가 녹록지 않다. 그러나 ‘끼’가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특성화고를 찾아 학교의 특징, 전형방식, 진학실적 등을 알아본다.

[ 한/국/애/니/메/이/션/고 ]
그림솜씨가 타고 나거나 애니메이션 창작에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하남시 검단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 애니메이션고(교장 정순각·이하 애니고)는 지난해 입시에서 평균 7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관심이 쏠리고 있다. 6회 졸업생을 배출한 애니고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자율이 경쟁심 북돋워
  애니고에 처음 들어서면 여느 학교와는 딴판인 풍경에 어리둥절해진다. 머리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학생이 청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지나가는가 하면 단정한 교복 차림의 학생이 종종걸음 치는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애니고의 가장 큰 특징은 창조를 위한 ‘자율’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지만 외출이 비교적 자유롭다. 또 교복이 있지만 선배들에게 자신을 알려야 하는 1학년을 제외하고는 복장 또한 자율이다. 심지어 학교 식당 배식도 학생들에 의해 완전 자율로 이뤄진다. 일정한 규칙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학생들이 봉사하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배식에 차질을 빚은 적이 없다.
  정수현(49) 교사는 “4시간 연강으로 이뤄진 ‘드로잉(drawing)’수업에서도 3시간은 음악을 틀고 학생들끼리 웃고 얘기하면서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게 한다”며 “스스로 지원한 학생들인 만큼 특별한 규제가 없어도 알아서 열심히 하고 자연스레 경쟁심이 생겨 작품수준도 대학수준에 버금갈 정도”라고 밝혔다.
  이외에 특이할 만한 점으로 야간 작화 시간을 들 수 있다. 일반 학교의 야간 자율학습과 비슷한 개념으로, 모든 학생이 배정된 작화실에서 작품 실습이나 연구에 몰두한다.
  이지영(애니메이션과 3년)양은 “오후 7시부터 밤 12시30분까지 이어지는 ‘야작’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학교생활의 성패가 달렸다”며 “공모전 출전이나 입시를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 등이 이 시간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김선화(49·여·서울 잠실동)씨는 “애니고는 엄마도, 아이도 행복한 학교”라고 극찬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 스트레스도 없고, 사교육 부담도 없어 아이들과 마찰 빚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어 “애니과 2학년인 딸 승민이가 ‘피곤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며 “졸업하기 싫다는 아이를 보며 이게 바로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졸업생의 진로는
  올해 졸업생 98명 중 일본 13명, 미국 1명, 영국 1명 등 해외대학 진학이 두드러진다. 특히 애니메이션과와 만화창작과를 주축으로 한 일본 유학생이 올해까지 총 55명에 이르며 파슨즈(Parsons) 대학 등 미국 내 유명 디자인 계열 대학 합격자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현재 도쿄공예대학·교토조형대학·도쿠야마대학·도쿄공과대학과 자매결연해 학생들의 진학을 돕고 있다.
  일본 니혼대 방송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김신아(영상연출과 3년)양은 “학교차원에서 일본 대학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중요한 정보를 얻기 쉽다”며 “합격한 선배로부터 진학 정보를 얻거나 일본어 공부법도 배울 수 있어 학교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고 말했다. 
 
어떤 시험을 치르나
  만화창작과·애니메이션과·영상연출과·컴퓨터게임제작과 각각 25명씩 총 100명을 모집한다. 전통적으로 만화창작과와 애니메이션과가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지난해 만화창작과의 경우 지원한 10명 중 9명이 탈락하는 등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각 학과의 전형방식은 내신성적 90점, 실기 105점, 가산점 5점 등 총 200점 만점으로 동일하다. 특성화고인 만큼 실기 성적이 합격을 가름한다.
  만화창작과는 카툰(30%)과 칸만화(70%) 실기를 통해 구성·표현·발상력을 테스트한다. 애니메이션과는 주어진 주제에 따라 연필 스케치 후 수채화 채색으로 완성하는 작품을 통해 묘사력이나 채색능력을 평가한다.
  애니고가 매년 전국규모로 개최하는 ‘한국 전통캐릭터/만화/영상작품 공모전’ 입상자(3등급 이상)에게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 한/국/게/임/과/학/고 ]
한국의 게임 산업은 이미 세계적이다. 그러나 그 개발이 일부 분야에 치우쳐 있어 소비자의 편식이 심하다. 마땅한 제작 시스템과 인력이 문제다. 시스템은 자본을 들이면 된다지만 인력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오랜 기간 절치부심한 끝에 이제야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 교육기관이 있다. 한국 게임과학고(교장 정광호·이하 게임고)가 그 곳이다.


기숙사 생활로 규율 엄격
  전교생 300명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여느 기숙사형 학교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규율이 특징이다. 한달에 한번 집에 다녀올 수 있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게임 마니아들에겐 그마저도 시간이 아깝다. 방학도 없다. 자율학교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교장 재량으로 학사 운영을 하는 탓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불만이 큰 것은 아니다. 기꺼이 그 시간을 반납하고 게임 제작에 몰두한다.
  “처음엔 적응에 힘이 많이 들었어요. 너무 규칙적이고 빠듯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제작할 수 없어요. 컴퓨터로만 작업하는 과정이라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지면 시간 낭비가 심하죠. 그리고 스스로 하고 싶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이병만(게임고 3년)군은 자신의 팀이 개발한 새로운 리듬액션 게임을 설명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현재 게임과학고의 에이스로 통하는 이군은 게임 제작팀 ‘Team Ice Cube’의 리더다. 게임과학고 학생들은 2학년이 되면서 기획·그래픽·프로그램 세 분야로 나뉘는 게임제작팀의 일원이 된다. 보통 3명이 1팀이지만 제작 계획에 따라 5명까지 확대할 수 있다.
  게임과학고는 게임 플레이어 양성 학교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게임 플레이는 e-스포츠 팀으로 선발된 학생에게만 허용된다. 학과시간엔 오로지 게임 제작에만 몰두한다.
  1학년 때는 비교적 간단한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고 2학년부터는 본격적인 컴퓨터 게임을 개발한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반드시 영어 또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한달에 4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한다. 또 저녁 7시부터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야간 개발학습에서는 컴퓨터 분야 대학원 과정을 방불케 하는 고난도 수업이 진행된다.
  이군은 “게임을 제대로 제작하려면 건축도 알아야하고 심리학도 꿰뚫고 있어야 한다”며 “책 많이 읽어 풍부한 상식을 갖고 있다면 학교 와서 좀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충고한다. 
 
해외대학 다수 진학
  올해 졸업생 65명 가운데 7명이 미국 디지펜 대학(DigiPen Institute of Technology)에 합격했다. 워싱턴에 위치한 디지펜 대학은 미국 내 대표적인 게임 관련 대학이다. ‘디지펜 대학에 유학을 원한다면 게임과학고에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마다 많은 수가 합격하고 있다.
  정광호(56) 교장은 “사실 게임고의 커리큘럼은 디지펜 대학 합격을 위해 짜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물론 대학 입시를 위해 만든 학교는 아니지만 아직 게임에 대한 국내 인식이 성숙되지 못해서 미국의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많이 시키는 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게임에 목숨 걸겠다는 생각 없이는 이 학교에 원서도 쓰지 말라”고 강조했다.
  게임고에는 현재 70명의 교사가 있다. 이는 학생수 300명 규모의 학교에 교사 30명이 적정 수준이라는 교육과학부의 권고안에 어긋난다. 그러나 분야별 심화 교육을 위해 징계를 감수하면서까지 학사운영을 하고 있다고 정 교장은 설명한다. 
 
어떤 절차로 학생을 선발하나
  특별전형 25명 일반전형 75명 등 총 100명을 모집한다. 내신 성적을 위주로 평가하는 특별전형은 전체 내신 평균 3%이내, 수학 2%이내, 내신 평균 25%이내 등으로 나눠 선발한다.
  일반전형 e-스포츠 부문은 총 5명을 선발하는데, 인기게임인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 입시 게임대회를 통해 4명을 선발하고 여름방학 청소년 게임캠프 최우수자 1명을 별도로 선발한다.
  정보올림피아드와 수학·과학 등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는 가산점 혜택이 주어진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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