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忍’의 위력 파이터 윤동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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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26면

지난달 29일 드림2 그랑프리 개막전에 출전한 윤동식이 일본의 오마야 슌고에게 파운딩을 퍼붓고 있다.

인내, 심장 위의 칼

윤동식은 말했다.
“인내는 나약한 것이 아니다. 먼저 나서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忍’은 심장(心) 위에 칼(刀)이 있는 형상이다. 늘 긴장할 수밖에 없고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다. 다만 마음먹으면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윤동식은 지난달 29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K-1 종합격투기 ‘드림(DREAM)2 미들급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일본의 오마야 순고에게 3-0으로 판정승했다. 이 승리로 그는 다음달 15일 열리는 그랑프리 8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윤동식의 승리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유도 기술을 아끼고 타격 기술로 이겼기 때문이다. 윤동식이 진화하고 있으며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윤동식은 “원래 타격도 쉽게 지지 않을 만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도를 오래해서인지 상대 얼굴을 공격하는 건 여전히 불편하다. 이번에 타격을 보여줬으니 다음 상대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프라이드에서 4전 전패를 당하다가 K-1 이적 후 4연승했다. 경기를 할수록 강해지는 윤동식은 올해 그랑프리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K-1 종합격투기 대회 이름이 ‘드림’이다. 꿈, 정말 맘에 든다. 드림에서 세계 최고의 꿈을 이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이 말 속에 윤동식의 회한과 비통한 염원이 있다.

윤동식은 90년대 유도 81㎏급의 간판이었다. 93년부터 3년간 12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제 대회 47연승을 기록했다.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과 97년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몸을 다쳤고, 승복할 수 없는 판정패를 당했다. ‘비운의 유도왕’이란 별명이 이때 붙었다.
윤동식은 “도복을 입고 있을 땐 올림픽 금메달이 유일한 꿈이었다. 실패했지만 아쉬움은 한편에 묻어뒀다. 실패를 이겨내는 것이 인내다. 격투기 링에서 다시 찾아온 기회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윤동식은 이 말을 하면서 허리에 챔피언 벨트를 두르는 시늉을 했다.
 
도전, 윤동식의 숙명

윤동식은 싸우고, 이기고, 실패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때마다 인내와 재도전이 이어졌다. 윤동식은 체급을 90㎏으로 올리고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3경기 연속 한판승을 거두다가 준결승전에서 졌다. 끝내 정상에 서지 못하고 은퇴했다.

한국마사회에서 코치로 일하던 윤동식은 후배들이 흘리는 땀을 보곤 몸이 뒤틀렸다. 매트에 서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2003년 리투아니아 대회에 코치 자격으로 갔을 때 후배들이 장난 삼아 뛰어 보라고 권유했다. 그 대회에서 윤동식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이 넘었다. 다시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권영호에게 지고 깨끗이 매트에서 물러났다.

윤동식은 “나는 끝까지 자신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은퇴했다가 나이 서른에 돌
아온 나를 좋게 보지 않더라”며 웃었다.

은퇴 후에도 몸이 근질근질했다. 한국에 종합격투기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소개됐을 때 일본의 유도 영웅 요시다 히데히코가 프라이드의 영웅이 되는 걸 봤다. 윤동식과 요시다는 매트에서 맞붙은 적은 없지만 훈련은 몇 번 해본 사이다.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 후 한 달도 안 돼 프라이드의 사각 링에 올랐다. 첫 상대는 일본 격투기의 영웅 사쿠라바 가즈시. 일본이 만든 프라이드는 영웅을 더욱 빛나게 할 상대로 유도 스타인 동시에 초보 격투가인 윤동식을 맞붙였다. 결과는 38초 만에 패배.

다음 경기에서 윤동식은 유도 매트에서 두 차례나 꺾은 다키모토 마코토와 맞서 판정패했다. 이후 만난 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퀸튼 잭슨, 주짓수 세계 최강자 무리요 부스타만테에게도 판정패했다. 종합격투기의 벽은 높았다. 그러나 그는 “경기장에 들어서면 5만 명, 7만 명 관중이 환호성을 지른다. 유도에서 느낄 수 없었던 흥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면서 배웠다

윤동식이 만난 상대들은 하나같이 체급의 강자였다. 그러나 그는 연패 속에서 점점 강해졌다. 기라성 같은 선수들도 그의 유도 기술에 당황했다. 윤동식은 “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더라”고 회고했다. 지난해 프라이드가 야쿠자 개입설로 인해 간판을 내렸다. 다시 한번 인내가 요구됐다.

K-1 히어로즈(현 드림)에서 그를 불렀다. 윤동식의 첫 상대는 ‘사람 잡는 타격가’라는 멜빈 맨호프. 1라운드 내내 얻어맞았다. 오른쪽 눈은 퍼렇게 멍든 채 감겼다.

1라운드가 끝나자 세컨드가 “큰일나겠다. 기권하자”고 소리쳤다. 윤동식은 “미쳤어
요? 저 친구 그라운드에서 잡아 보니까 빈 틈이 많아요. 두고 보세요. 꼭 이길 테니까”라고 맞받았다. 그러고는 기어코 2라운드에서 암바(가로누워 팔 꺾기)로 기권승을 이끌어냈다. 종합격투기 5경기 만에 거둔 첫 승이었다.

이후 윤동식은 젤그 갈레시치·파비오 실바 등을 모두 암바로 이겼다. 유도에서 세계 최고로 꼽힌 그의 기술이 드디어 꽃을 피웠다. 사쿠라바조차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기술이다. 정말 좋은 무기를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

종합격투기 정상급 스타로 성장한 윤동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소탈하다. 알아보는 팬이 많아져 뿌듯하면서도 수줍다. 지난주 올림픽공원에서는 웃통을 벗고 러닝을 하다가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때마침 리베라 호텔을 원정 숙소로 쓰는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선수단이 지나갔다. 한양대 선배 이만수 수석코치를 보자 윤동식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선배님, 밥 좀 사주십시오.” 이 코치는 “이 친구 봐라? 자기가 더 잘나가면서…”라며 껄껄 웃었다.
윤동식은 “정상에 서고 싶고, 그 자리를 3~4년쯤 지키고 싶다. 그렇지만 링 밖에서 튀고 싶진 않다.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런 일상이 좋다”며 웃었다. 평생 영광과 좌절, 인내와 도전을 반복해온 윤동식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참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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