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어린 시절 겪어 나눔의 소중함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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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밥을 그렇게 많이 퍼시면 어떻게 해요.”

“아유, 괜찮아요. 인색하면 못 써요.”

조용근(62·사진) 한국세무사회 회장이 청량리에서 무료급식 ‘밥퍼’ 봉사에 등장하는 매달 첫째 금요일에는 으레 다른 봉사자들과 이런 말이 오간다. 그가 식판에 고봉밥을 담는 것은 어린 시절 배고팠던 기억이 밀려와서다.

조 회장은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머지 들쥐를 잡아먹기도 했다”며 “가난을 겪었기에 나눔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덤으로 부지런함까지 배웠다”고 말했다. 38년6개월 동안 국세청에 근무하며 지방국세청장에까지 올랐던 그는 1년 전 세무사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원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청량리에 나가는 것도 그 일환이다. ‘밥퍼’ 봉사를 이끌고 있는 강동국 목사는 “조 회장처럼 지속적으로 묵묵히 도와주는 분은 드물다”라고 귀띔했다.

조 회장은 “모든 걸 주고 가겠다”는 생각에 2000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지갑에 장기기증등록증을 자랑스럽게 넣고 다닌다.

“모든 걸 다 주고 가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오히려 맘이 편하더라고요. 장기기증등록증 보여주면 술자리에서 폭탄주도 덜 먹을 수 있고요(웃음).”

부인과 함께 장학재단도 꾸려나가고 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서울 구의동 집을 판 돈으로 세운 재단이 지금까지 고학생들에게 지원한 금액은 6억원이 넘는다. 장학재단 이름은 ‘석성.’ 부모님의 함자에서 하나씩 따온 이름이다.

“아버지의 유언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처럼 일자무식이 더는 없는 세상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이었어요. 조금이나마 그 뜻을 따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의 뜻을 전해들은 많은 기업인들과 동료들도 손을 보태주고 있다.

“뜻이 좋으면 다 잘 풀리게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자식들에겐 한 푼도 상속 안 해줄 작정인데, 외려 아이들도 제 뜻을 따라주고 있어요. 딸이 첫 월급을 통째로 주면서 ‘어려운 사람들 위해 써달라’고 할 때는 눈물까지 납디다.” 

글·사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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