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만 사태가 주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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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는 지난 13일 진행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두 가지의 큰 사건을 목격했다. 하나는 선거 전날인 12일 오후 총통 후보들이 마지막 유세전을 펼치다 발생한 천수이볜(陳水扁)의 피격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33만표의 투표용지가 무효 처리돼 陳총통이 연임한 결과다.

이번 대만 대선에선 후보와 유권자의 희비를 모두 바꿔놓은 과거 외국의 사례가 동시에 나타났다. 우선 지난 14일 진행된 스페인 총선에서는 선거 사흘 전 발생한 열차 테러 폭파사건으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던 야당이 총선의 승리를 맛보았다. 그리고 3년 전 미국 대선에서는 플로리다주의 투표용지가 역시 무효 처리돼 부시 대통령에게 오늘날의 영광을 안겨다줬다. 이 모든 사건들이 종합적으로 대만의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표출되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1987년 한국과 대만은 당시 국가 최고지도자가 민주적 정권 이양을 선포함으로써 민주화를 달성한 '네 마리의 용' 중 두 마리였다. 이들 용은 축적됐던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당시엔 계속 승천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 우리와 대만이 지금 치르고 있는 민주주의의 대가는 너무나 크고 혼란스럽다. 특히 중국에 대한 우리와 대만의 경제.무역분야에서의 의존도가 날로 심화돼감에 따라 전통적 안보관이 기로에 처한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안보 이익, 즉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안보 이익에 대해 자연스럽게 소원해질 수밖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특수한 전략적 지리 조건에 처한 만큼 우리와 대만의 안보관과 국가 이익관도 그만큼 특별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만 사태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거리다.

한국과 대만은 여러 면에서 유사한 사회.정치적 공통점이 있다. 첫째, 우리와 대만은 모두 87년 이른바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룩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서도 민주화 운동을 지속해 성과를 얻었지만 대만은 '촛불시위'를 통해 이를 달성했다. 둘째, 우리와 대만 모두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좀더 독립.자주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려는 정부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특히 대만의 경우 이번 대선에서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독립 문제와 관련된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결과는 부결로 나와 대만을 리드하는 현 정부 지도층의 생각과 민심의 총체적 방향이 아직은 합일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셋째, 한반도와 대만해협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지역으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이 특수한 전략적 지리 조건은 두 지역의 통일 문제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지도부의 냉철한 판단 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대만의 다른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대만과는 달리 한국의 정체성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한민족이라는 같은 공동체 의식 속에서 통일과 경협 문제를 논의하지만, 대만인들이 스스로를 '대만인'으로 보는 정서가 심화되고 있어 통일 문제의 논의가 쉽지 않다. 둘째, 대만의 경우 정치제도의 투명성이 우리에 비해 떨어진다. 대만의 정치부패에 대한 수사의 벽이 우리보다 높고 두껍다. 그리고 대만의 통일 대상국은 우리와는 달리 대만 전체를 삼키고도 남을 만큼 큰 중국인 반면 한국은 인구.국력.역사적 대의 등이 작은 북한을 상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만 사태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 앞엔 한국 정국을 양분화해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수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사, 4월 총선,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대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정국의 안정을 위해 도와줄 나라가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국내외 정세의 수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냉철함과 이성이 국민에게 요구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중국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