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무난한 것 70% 튀는 제품 30% 해외 패션 브랜드 ‘수입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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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면1. 여행지에서 ‘로로 피아나’의 기내용 가죽가방 구입을 망설였던 주부 윤모(49·서울 서초동)씨. 큰 맘 먹고 국내 매장을 찾았지만 사려는 아이템은 없었다. ‘그때 살 걸’하고 후회하던 윤씨는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들었다. “왜 내가 사려는 제품은 국내 매장엔 없을까?”

장면2.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팬이라는 대학원생 박모(30)씨는 인터넷 구매 대행 사이트의 단골 고객이다. 원하는 상품을 국내 매장에선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의문부호를 품는다. “국내에 들여오는 제품의 기준은 무엇일까?”

해외 출장과 여행을 통해 안목을 높이고, 패션잡지를 통해 연마한 자신의 감각을 믿는 ‘까칠한’ 소비자들이 늘면서 브랜드 구매 담당자(MD)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한국에서 팔 물건을 골라오는 것일까. 왜 내가 찾는 가방은 MD 눈에 들지 못한 것일까.

#7:3 법칙

“우리 소비자들은 아직까지 ‘기본’을 선호해요. 크게 튀지 않는 디자인에 베이지, 검정, 흰색 같은 것들이죠.”

명품 구두 편집매장인 ‘슈콜렉션’ 바이어 김은경(신세계백화점 명품관) 과장은 ‘7:3 법칙’을 꼽았다. 한번 구입해서 오래 쓸 수 있는 기본 제품군을 7, 유행색이나 색다른 소재가 가미된 제품군을 3의 비율로 들여오는 것이 ‘기본 공식’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유행보다는 안전을 선택하거든요.”

그의 말에 따르면 기본 제품에 속하는 ‘베이지색 5 굽 프라다’나 ‘금장 리본이 달린 페라가모’는 다른 제품보다 서너 배 높은 매출 실적을 올린다.

김 과장은 “그래도 최대한 ‘독한(자극적인)’ 아이템을 소개하려고 애쓴다”고 털어놓았다. 기본 아이템 비율이 7을 넘으면 지루하다고 외면받기 때문이란다. ‘크리스찬 루부탱’이나 ‘마놀로 블라닉’ 같은 전문 브랜드는 10 굽이나 형광색 등 ‘센’ 제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디자인의 제품이 있어야 손님들이 ‘이 매장은 감각 있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팔리지 않으면 자선바자에 기부하거나 연예인에게 선물로 보낼 각오”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화려한 제품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미끼인 셈이다.  

#스테디셀러-스테디바잉

의류도 마찬가지다. ‘마크 제이콥스’를 들여오는 이정은(F&C코오롱)씨는 “우리 소비자들은 좋은 소재를 선호한다”고 잘라 말했다. “디자인은 단순해도 값비싸 보이는 캐시미어나 실크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가방은 종류가 다양한데 왜 옷 종류는 상대적으로 적을까. “가격 대비 효과가 옷보다 가방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이씨의 분석이다.

이씨는 “그래서 베스트셀러인 ‘스탐백’은 시즌별로 100점 이상 갖다 놓지만, 의류는 10점 내외, 그것도 기본적인 니트 스타일이 주가 된다”고 말한다. 제품 구색이 다양하지 못한 건 MD의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는 항변이다.

‘띠어리’의 원경미(제일모직) 치프 디자이너는 “어느 브랜드나 매장에 가면 반드시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핵심 제품이 있다. 그 제품이 중심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브랜드의 대표 상품은 단순하면서도 다리가 길어 보이는 ‘맥스 바지’다.

샤넬’의 ‘2.55백’이나 ‘버버리’의 체크 무늬 트렌치 코트 같은 대표 상품은 언제나 매장에 구비돼 있다.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입문 고객’용이다. ‘훌라’를 담당하는 문현희(롯데쇼핑) MD는 “명품에서 진득하게 팔리는 것은 그 브랜드를 상징하는 제품 위주”라고 말했다.

반대로 튀는 디자인이 브랜드의 성격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돌체 앤 가바나’와 ‘D&G’를 수입하는 박태희(신세계 인터내셔날) 과장은 표범 무늬 안감이 드러나도록 소매를 걷어 입는 검은색 재킷을 대표 상품으로 소개했다. “요즘 학부형 모임 스타일이라면서 30대 ‘강남 엄마’들이 많이 사가요. 매일 팔리는 아이템이라 매번 전체 상품에서 10~15% 비중을 차지하죠.”

#우리나라에선 ‘절대 안 되는’ 것들

그렇다면 MD들이 금기시하는 아이템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익숙하지 않으면 잘 안 나가요. 어깨 선이 한쪽만 파인, 비대칭 디자인이 대표적이에요. 또 랩 스커트는 죽어도 안 되고요. 입고 벗기 불편하다는 게 소비자들 얘기죠. ‘밀리터리 룩’도 번번이 실패합니다. 사회문화적 터부 때문이겠죠. 대신 색깔에 대한 편견은 거의 깨졌어요. 분홍색, 초록색에 노란색 재킷까지 입더라고요.”

수입의류 편집매장 ‘스티븐 알란’을 총괄하는 우희원(갤러리아백화점) 과장은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선 절대 안 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었다.

노출이 심한 의류도 대개 국내 매장에선 볼 수 없다.“아시아로 들어오는 원피스에는 비치지 않게 받쳐 입는 슬립 드레스가 딸려 나와요. 매장에선 깊게 파인 부분에 천을 덧대주고요.”(이정은, 마크 제이콥스). “V네크를 깊게 파서 가슴을 드러내는 데에는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어요. 어깨를 드러내는 ‘오프 숄더’ 스타일은 아직 거북해 하지만요.”(우희원, 스티븐 알란)

남성복은 더 보수적이다. ‘제이프레스’ 최동순(롯데쇼핑) 과장은 “우리나라 남성들은 ‘스리 버튼’에 배타적”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맨 위에 장식 버튼을 다는 것이 저희 특징인데, 굳이 ‘투 버튼’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입는 걸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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