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식 재활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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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32면

최근 주가가 다시 오르고 있지만 지난해 여름 이후 급락 장세의 고통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투자자가 많다. 사실 주식을 좀 한다는 투자자들로부터 보유한 주식이 거의 휴지 조각(일명 깡통주식)이 되거나 상장이 폐지되면서 겪었던 아픈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특히 2000년을 전후로 벤처기업 투자 붐이 일었을 때 잘 알지도 못하는 비상장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에게서 이런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깡통주식도 ‘재활용’하면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

상장기업의 대주주인 강모(54·서울)씨는 얼마 전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보유 주식의 일부를 팔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대주주’(발행 주식의 3% 이상 또는 시가 100억원 이상 보유)라는 딱지 때문에 주식을 팔면서 양도소득세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현재 상장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매도하면 차익의 10~30%에 이르는 양도세를 내야 한다.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매매차익이 10억원이면 최소 1억원 넘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강씨에게는 까맣게 잊었던 깡통주식이 있었다. 강씨는 7년 전 벤처기업 주식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애초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회사는 3년 뒤 망했고, 주식도 휴지가 됐다. 그런데 평소 알던 세무사와 얘기하다가 깡통주식을 다른 주식과 같이 매도하면 양도세를 공제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양도세 규정에는 ‘동일 그룹 내 양도차손 공제’라는 게 있다.

과세 대상 자산을 부동산과 유가증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눈 뒤 동일 그룹에서 발생하는 양도 손실액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액에서 빼주는 제도다. 즉 A 주식을 팔면서 손실이 생기면 B 주식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제해 세금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해에 매도한 경우에만 해당된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여러 종류의 ‘비상장주’를 보유하던 최모(42·경기도 용인)씨는 지난해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해당 주식을 팔았다. 아쉽게도 일부 종목에선 손실이 발생했지만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최씨는 비상장주를 매도하면 종목마다 발생한 이익에 대해 양도세를 물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양도차손이 발생한 종목이 효자 노릇을 했다. 수익이 발생한 종목의 양도소득세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만약 최씨가 같은 해에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다면 에누리 없이 양도세를 내야 했을 것이다. 깡통주식이나 손해 보고 파는 부동산이 양도소득을 줄여줘 세금을 덜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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