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 올라가고 있지만 바닥까지 따뜻해진 건 아니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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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06면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 회의’에 앞서 재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예전엔 밤 늦은 시간 과천 관가에 불이 켜져 있으면 덜컥 겁부터 났다. 얼마나 많은 규제를 만들려고 저렇게 야근까지 할까 하는 두려움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경기도 과천에 사는 중소기업 사장 A씨는 “현 정부가 기업 관련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데 대해 환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재계선

이명박(MB) 정부에 대한 재계의 기대감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크다.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인 만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지난해 12월 28일 재계 본산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정부를 만들겠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실제 MB 정부 출범 이후 굵직굵직한 친기업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5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분리 완화,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금지 대상 축소,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의 법안이 대거 상정될 예정이다.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 감세 법안도 다뤄질 전망이다. 이른바 ‘규제 전봇대’ 뽑기 법제화 작업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주요 기업인에 대한 공항 귀빈실 개방, 대통령과 휴대전화 핫라인 개통 등 ‘기업인 기 살리기’ 정책도 잇따라 나왔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에게 직접 커피를 따라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정부는 투자에 불편한 여러 가지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겠다”며 “과감하게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화답해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올해 30대 그룹이 95조6000억원의 신규 투자를 할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26.6%나 늘어난 것이다.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던 기업의 해묵은 투자 프로젝트들이 햇볕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B 정부 두 달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분명히 수은주는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 바닥까지 따뜻해진 것은 아니다”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친기업 정책을 피부로 체감하기에는 이르다는 얘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 전무는 “대내외적으로 경제 여건이 어렵다 보니 방바닥이 따뜻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MB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마냥 찬사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은 수혜자가 몇몇 대기업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시립대 강철규(전 공정거래위원장) 교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소수 대기업에만 치중된 느낌”이라며 “대기업 친화보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부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그룹 관계자는 “공항 귀빈실 이용 신청자 중 해외 출장이 잦은 계열사 사장은 빠지고 해외에 나갈 일이 별로 없는 사장이 들어갔다”며 “공항 귀빈실 이용자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휴대전화 핫라인도 개통했다지만 대통령에게 실제 전화 걸 사람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 관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동계가 MB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해 ‘기업만 있고, 노동자는 없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총 이동응 전무는 “춘투가 본격화하는 6월 말께 정부 대응이 그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기 두산중공업 파업을 노동부가 중재하면서 급격히 친노(親勞) 성향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만큼 MB 정부는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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